-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자파르 파나히 감독 /2025년 10월)
폭력은 상호간에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악의는 쉽게 전염되고 증오는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 비극적 반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모든 것을 덮어두고 무마하는 식의 손쉬운 화해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미워해야 한다. 폭력의 실체와 반복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직면해야 한다. 악의와 증오의 최후까지 도달한 후에 이를 악물고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의 시작이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이다.
2025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거대한 국가 폭력에 의해 상처입고 망가졌던 이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폭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선택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시작은 밤길 운전을 하던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개 한 마리를 치어 죽이는 장면이다. 함께 타고 있던 아내는 그 일이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며 남자를 위로하지만, 어린 딸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 아빠가 그 개를 죽인 거라고.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알레고리가 되는데,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명백한 사실을 뒤로 감추고 ‘사고’라는 포괄적인 말로 합리화하는 이들의 비열함은 아이의 말과 대비되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설령 ‘사고’라고 한들 ‘그저 사고’로 끝날 수는 없다. 가해자는 그런 언어로 책임을 회피하고 싶겠지만, 그 일 이후에도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형이고 기억은 반복되며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갈수록 선명해진다. 그렇기에,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바히드’는 차를 수리하러 온 남자의 삐그덕대는 의족 소리에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만다. 울분은 극도로 치닫고, 그는 복수를 감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의족 소리만으로 그가 고문 가해자 ‘에크발’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의 복수는 지연된다. 기절시켜 차에 묶어둔 이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바히드는 과거 자신처럼 고문 피해를 당했던 이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은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에크발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지만 혹시나 무고한 사람을 오해한 것일까봐 망설이며 복수를 지연하는 사이, 만삭이었던 에크발의 아내가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응급한 상황에서 울며 전화를 건 에크발의 딸을 바히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결국 복수를 다짐한 사람의 태도라고는 온데간데 없고 바히드는 마치 그들의 가족인 양 출산을 돕고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는 과자를 사서 병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까지 한다. 그 장면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뭉클하다. 그냥 덮어두고 하는 용서도, 과거의 상처를 흔적 없이 삭제하는 비현실적 화해도 아니며,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의 ‘다른 선택’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가해자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일을 숭고하게 되갚아주었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에 들려오는 의족 소리. 그건 죽을 때까지 바히드에게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폭력적 복수를 감행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한 그에게 그 소리는 과거의 동일한 반복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