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매 Jul 12. 2023

EP 04. 전복 먹으러 갈래?

영탁 - 전복 먹으러 갈래

완도가 어디냐

나는 지난 1월부터 전라남도 완도군과 인연을 맺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출장을 다니면서 주변에 "내일은 어디에 간다"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면 보통 "또 출장 가?" 정도의 답이 돌아오지만, 희한하게 완도는 달랐다.


- 나 내일 완도 출장 가. 2박 3일.

- 완도? 완도? 완도가 어디야, 전복?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완도 프로젝트 맡아라.' 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만 떠올랐다. 전복. 이것 말고는 완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호남 지방에는 연고지가 하나도 없는 나로써는 솔직히 땅끝마을 해남보다 더 멀리 있는 완도에 내 발로 찾아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전복 하나 가지고 무슨 개발을 해... 하지만 쥐어 짜내듯이 '아는 것'을 찾아내 방문한 완도는 생각보다 넓고 매력적인 자원이 넘치는 환상의 섬이었다.


4월,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에서


보통 '여수여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완도여행' 하면 떠오르는 건 딱히 없다. 대신 '청산도 여행', '보길도 여행' 등으로 세분화시켜 생각한다면 그나마 연상되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겠다. (여전히 '완도전복'을 이길 수 있는 키워드는 없다.) 그것이 완도의 매력이요, 완도의 한계점이다. 멋지고 매력적인 경관자원과 신선하고 맛있는 수산물이 넘치지만 '이 모든 게 다 완도 것이요!' 라고 당당하게 외칠 만한 기회가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아무 기대 없이 완도 출장길에 나섰던 나는 가는 곳곳마다 문화적 아니 관광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완도에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와, 어떻게 이렇지? 어떻게 서울에서는 여기를 모르고 살 수가 있지?"


완도에 전복 뿐이라고? 그게 어때서.

정말 솔직히 말해 완도는 참 심심한 섬이다. 유독 하루가 빨리 저물어 어둠이 일찍 찾아오고, 이곳 사람들도 그저 웃을 뿐이고, 어디에 서있든 바다와 산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 고요함을 넘어 적막함에 빠져들게 한다. 그것이 내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완도에 찾아가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경험을 해본 곳, 길을 잘못 들면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괜히 내려서 바다 한 번 보고 소리치는 패기를 부려보게 해준 곳이니 말이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출장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사리사욕을 채워 '마음 힐링'만 잔뜩 하고 온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반 년만에 완도 전복이 맛있는 이유를 알아낸 것 같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완도 바다의 구성부터 살펴봐야겠지만, 나는 타고난 문과생이기에 그런 요인을 설명할 재간이 없다. 다만 완도가 나에게, 관광객 아니 그냥 지나가다 완도에 들른 모든 사람들에게 완도의 참맛을 깨닫게 해준 이유만큼은 알 수 있겠다. 완도에서는 한적한 공간, 적당히 조용한 공기,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명상을 즐길 수 있을 듯한 모든 순간들을 경험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비릿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후, 갓 잡은 전복을 입에 넣는 달달한 순간. 완도 전복은 그 자체로 기본기가 탄탄한 특산품이지만, 완도 안에서 소비되는 모든 순간이 더해져 제대로 된 완전 식품이 되는 듯하다.


단 하나의 특산품이 지역 전체의 매력을 나타내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특산품으로 인정 받기까지 모든 과정에는 그 지역만의 자연환경, 사람들 그리고 모든 여행의 분위기가 포함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서울로 돌아와서도 마트에서 완도 전복을 발견하거나, 완도에서 올라온 전복이 들어갔다는 해물탕만 봐도 가슴이 설레곤 한다. 전복 하나만으로 설레게 하는 프로젝트 대상지는 처음이라 그런 걸까.



전복 먹으러 갈래?

전복 먹으러 갈래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완도 앞 바다로

나랑 같이 가볼래


영탁의 <전복 먹으러 갈래>라는 노래가 있다. 완도 앞바다에 전복 먹으러, 바다 보며 기분 풀러 가자는 내용의 신나는 트로트 곡이다. 이 노래도 전복의 맛보다는 완도 앞바다와 전복이 전하는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을 아는 이가 작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 그렇지 않고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내기 위해 대뜸 전복을 들이밀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이 사람, 완도전복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노래가 주는 힘을 믿는다. 특히 가사 한 줄로 반가운 마음이 들고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떠올라 가슴이 설레는 순간에는 그 믿음이 더 커지곤 한다. 종종 완도관광에 대해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다가도 출근길에 <전복 먹으러 갈래>만 듣고 나면 '그래, 전복이 있는 곳, 완도만 가진 힘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고민할 힘을 얻게 되니 말이다. 이제껏 어반자카파의 <목요일 밤>을 들으며 어딘가로 떠날 생각을 했다면 요즘은 <전복 먹으러 갈래>를 들으며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한다.


완도에 흠뻑 빠져 있는 반 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주어진 일이 변한 만큼 영감을 주는 음악도 변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EP 03. 트로트 덕후 모녀의 유튜브 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