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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Jul 16. 2023

EP 06. 클라이언트를 뉴스에서 본다는 것

애정하는 모든 지자체가 안녕하기를 바라며.

 나는 한국지리 과목을 정말 좋아했지만, 정말 지지리도 지리 공부를 못했다. 영남과 호남을 매번 헛갈려 할 만큼 지리는 재미있었지만 지리 공부는 영 별로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전국 지자체 지리를 꿰뚫어 보며 관광 개발이 가능한지 판단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그런 일을 하고 있기에, 나의 클라이언트는 전국 지자체일 수밖에 없다. 보통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도청, 시청, 군청, 구청이랑 같이 관광지 만드는 일을 해요." 라고 얼버무리는 걸 보니 내 클라이언트는 도청, 시청, 군청, 구청이 맞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클라이언트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하다. PR 에이전시에서 근무할 때 입에 붙은 이후로는 줄곧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이 업계 사람들은 발주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아무튼 클라이언트든 발주처든 나는 전국 지자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일하고 있다.


 보통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엮이지 않는 이상 유명하지 않은 지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단번에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저 감으로 '아 경상도 어디쯤', '아 강원도니까 춥겠지' 이정도로 파악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좀 다를 것이다. 어떤 지명을 들으면 그곳이 어디 있는지 곧바로 알아차리기는 물론이요, 그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함께 일했던 기억을 꺼내보기 마련이다. 어느 지자체나 꿈꾸는 '관광도시', '1등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이 만났던 공무원, 지역민, 관광객까지 지명만 봐도 n년 전의 프로젝트가 생각나 마음이 들뜨곤 한다.


 그래서일까. 뉴스를 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내가 담당했던 지역이 차츰 발전하는 소식을 보면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고, 행여 좋지 않은 일로 보도될 때면 괜히 걱정되는 마음이 들어 홈페이지, SNS 등을 들락거리며 틈틈이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제 오늘처럼 재난 상황으로 힘들어진 보도 내용을 전할 때면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아름다운 경관들이 청사진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모두가 무사한지 걱정이 앞선다. 보통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인해 지역에 사건, 사고가 터지면 나의 클라이언트인 공무원 분들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긴장되는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그 기간만큼은 우리도 차분히 기다리며 모든 일이 잘 해결되기만을 바랄 때가 많다. 그런 분주함과 긴장감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기에 재난 소식을 전해 듣는 나로서는 모두가 무탈하게 이 위기를 넘기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식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비 오네' 라고 생각하고 잠시 잠들었다 일어났을 뿐인데 전국 곳곳에 비보가 쏟아져 나왔다. 극도로 공감형인 나는 그 소식들을 듣고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아 휴대전화와 TV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살펴보니 직접 일을 하러 찾아간 곳,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러 제안 발표를 하러 갔던 곳, 꽤 멋진 사례라며 언젠가 여행으로 찾아가리라 다짐했던 곳들이었다. 함께 일하던 공무원 분들은 오늘도 현장에 발 벗고 나서 일하고 있을지 걱정되었고, 어느 하나 아깝지 않은 목숨이 없기에 참담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유독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잘잘못과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머리 아프게 느껴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썩 달갑지 않다. 함께 뜻을 모아 앞으로를 바라보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뉴스에서 클라이언트를 보는 일이 영 반갑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차라리 아무 소식도 듣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내일도 눈치 없이 많은 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안녕한 밤, 안녕한 한 주를 보내기를 바라며 오늘은 어떤 노래도 추천하지 않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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