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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Jul 31. 2023

EP 07. 커피를 끊었다.

겨우 2주 째이지만.

이건 거의 사형선고 아닌가요?

 자타공인 '커피 예찬론자'인 나는 오래 전부터 '커피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고들 하지만, 사실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입을 포함한 내 몸과 마음은 '커피 없이 살 수 없다'고 외쳤기에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부정맥 진단을 받으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카페인과 알코올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살면서 자잘한 불편함이나 질병을 마주했을 때마다 들어왔던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나 스스로 꽤 심각한 상태라고 느끼고 있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내 일상 속에서 커피를 없애 버리겠다'고 다짐하며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당장 다음 날부터 커피의 유혹에 시달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이하 아아) 없이 하루를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보다도 아침에 아아 없이 빈손으로 출근한다는 것은 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울했다. 최대한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해 다니는 내가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것이 커피였는데, 이마저도 마시지 못한다니. 사실상 사형선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면서 주변에서는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디카페인은 괜찮을 거야!" 등의 해결책을 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결코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다 보면, 자꾸 구멍이 커져서 결국에는 커피를 찾게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부정맥으로 힘들어 하는 순간이 더 많아지겠지! 참자. 참으면 된다. 오히려 커피를 마셔서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이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여기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선언하고 지켜나간 이후로 가장 많이 한 말은 "인생에 낙이 없어" 였다. 꽤 극단적인 성격인 나는 그 표현보다 나은 말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 타협하고 싶어질 때마다 '저건 커피가 아니라 독약이다, 커피가 아니라 사약이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다이어트는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커피 끊기'만큼은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분명 아무도 관심 없는 나와의 싸움, 외로운 자존심 전쟁이었다.


 커피에도 금단 현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커피의 카페인으로 인해 발생했던 혈관 수축/이완이 이루어지지 않아 두통이 생기기도 하고 구역질, 손 떨림, 불면증, 변비 등에 일주일 내외로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도 딱 하루 금단 현상을 겪었다. 두통이 엄청 심했고, 며칠 만에 심장 두근거림이 심해져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얼마나 카페인에 의존적인 일상을 살았으면 겨우 하루만에 바로 몸으로 나타나는지 무섭기까지 했다.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이렇게 아플 거라면 그냥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바로 유튜브, 뉴스 기사, 책에서 보았던 위기의 순간이구나! 이 순간도 이겨내야 진정한 나와의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셀프 1차 테스트'에 통과한 나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왠지 설레는 마음까지 느끼기도 했다.


겨우 보름 된 '논커피 인간'이지만요.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확실히 몸이 좋아졌다. 나도 믿지 않았던 말이지만, 내 몸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하루에 정기적으로 소비하던 습관도 줄었다.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 한 잔 값으로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바나나, 견과류 등을 살 수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사지 않는 날에는 회사에 구비된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꽤 산뜻한 마음마저 들었다.


 사실 커피 끊기 4일차에 들어선 날부터는 10년 동안 매일 마시던 '아아'가 생각나지 않았다. 남들이 마시는 걸 보면 조금 혹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몇 초뿐이었다. 대신 사회생활을 하고 지인들을 만나면서 '카페'가 필수 코스가 된 세상에 살아가다보니 '커피 아닌 메뉴'를 고르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대학생 때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당류가 많은 음료는 무조건 피하기 때문에 스무디, 프라푸치노, 에이드, 주스 등 단 맛이 나는 메뉴는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아아 50번에 단 음료 한 번 정도.) 그런데 믿고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선택지에서 사라지니 마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결국 남는 메뉴는 차(茶) 아니면 병음료(탄산수) 정도였는데, 무엇이든 잘 마시는 편이지만 왠지 비싼 돈 내고 그런 심심한 음료를 마시는 건 아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달달한 음료로 갈아탈 생각도 전혀 없었다. 커피를 버리고 또 다른 건강 브레이커를 맞이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결국 뜨끈한 차, 시원한 차, 탄산수와 얼음컵 정도로 타협한 나는 보름만에 진정한 '논커피 인간'의 길을 걷고 있다. 혹시 마음이 흔들릴까봐 남자친구가 무의식 중에 건넨 '아아 한 모금'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며 거절했고, 커피가 마시고 싶은 순간이 오면 화장실로 달려가 급하게 가글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나와의 자존심 싸움은 이제야 시작되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세를 몰아 빵과 술 끊기도 잘 지켜내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최대한 지켜보려고 한다.


 의사 선생님과 가족들 말고는 딱히 나의 외로운 싸움에 큰 관심이 없는 7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의 목표도 '커피, 빵, 술 안먹기'로 정해본다. 올해 들어 유독 스스로 의지박약이라 느끼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참에 건강과 자신감을 모두 챙겨보는 계기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커피, 지금껏 원없이 마셔봤으니 미련 없이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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