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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Aug 01. 2023

EP 08.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위에 내가 있으니

귀거래사

휴가 계획이요? 백수처럼 살기요.

"과장님, 제가 다음 주 내내 휴가라서요. 급한 일 생기면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바로 응대해주실 거에요."

"네, 애매님. 휴가 잘 다녀오시구요. 좋은 데 가시나봐요!"

"음... 그냥 집에 있을 거에요."

"왜요?"

"(왜 자꾸 물어보지) 그냥.. 덥기도 하고.."


 모두가 궁금해 하는 나의 2023년 여름 휴가가 시작되었다. 워낙 안팎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휴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휴가는 아무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무 계획 없이 끝날 예정이다. 지구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무더운 날씨도 한몫 했지만 사실 진심을 다해 쉬고 싶었다. 한 달의 2/3 이상 야근하고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는 삶에 지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좀 쉬고 싶었다. 굳이 휴가 컨셉에 대해 설명하자면 '4년만에 돌아온 백수' 정도가 되겠다. 그렇게 이번 휴가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 하는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늦잠 자고 먹고 눕고 아무 생각하지 않기.



어디인들 이 내 몸 둘 곳이야 없으리.

 20대가 6개월 정도 남은 이 시점에 앞으로 나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로 했는데,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이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지기만 했다.


 물론 당장 일을 그만 둔다거나 공부를 더 해서 학위를 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맺고 고민을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일과 공부를 빼고 나니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10대에는 공부만 했고, 20대에는 일만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역시나 사례조사, 벤치마킹이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이제껏 읽었던 책들을 종합해보기로 했다.


 바닷가가 고향인 친구는 40대가 되면 치열한 서울에서 탈출해 다시 바닷가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어떤 작가님은 잘 나가는 대기업 직원 자리를 버리고 작은 정원을 만들어 살아가는 행복을 이야기했다. 그 때마다 나는 "다 버리고 자연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람과 일에 치인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그건 칭찬을 가장한 부러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바람에 내 인생에서 그런 선택지는 지워진지 오래였는데, 왜 이제서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를 일이다. 갱년기 즈음에 들어서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는데, 나는 다 버리고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30년이나 빨리 하게 되는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집 한 채, 내 일자리 하나 찾기는 힘들겠지만 어디든 자연으로 가면 받아줄 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자연한테 물어본 적도 없고, 당장 떠나라고 하면 갈 용기도 없는 나이지만.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있으니


어디인들 이 내 몸

갈 곳이야 없으리


작은 것을 사랑하며 살 터이다

친구를 사랑하리라


 김신우의 <귀거래사> 라는 노래가 있다. 원래 중국 진나라 도연명이 전원생활을 노래하는 산문시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금잔디 가수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처음 접했으니 그 노래의 역사가 뒤죽박죽이기는 하다. 아무튼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유유자적 인생을 노래했다니, '현실을 도피하려는 지금의 내 마음은 그리 잘못되지도 틀리지도 않은 것 같다'는 위로도 스스로 전해본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 당장은 절대 못할 일이지만 남은 휴가 기간 동안 하루 정도는 지켜보려고 한다. 내 고향은 도시이니 돌아갈 자연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나는 심심함, 지루함, 단조로움 등의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보려고 한다. 사실 한적하게 쉬어가는 것마저 도전해야 한다니,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는 꼭 브런치에 <애매의 귀거래사> 시리즈를 연재할 날을 꿈꾸며.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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