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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Aug 04. 2023

EP 09.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진성 - 안동역에서

이 글을 쓰게 될 날만 기다렸다.

 2022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안동시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 담당자로써 난생 처음 안동을 찾게 되었다. 당시 나는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는데, 이유는 바로 이 노래 때문이었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던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진성의 <안동역에서>는 내가 처음 트로트에 관심을 갖고 찾아 다닐 때, 알고리즘을 따라 가장 많이 듣게 되었던 곡이었다. 2012년에 세상에 선보인 이 곡은 가수 진성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선사해준 곡이자,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이미 꽤 유명한 곡이기도 했다. 나는 특히 노래의 첫 도입부인 "바라아암~에~" 구간을 참 좋아하기에 안동역에 들어서면 바로 그 곡을 따라부르리라 결심하기도 했다. 이토록 직관적으로 지역을 나타내는 노래라니, 어찌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시청에 발을 들이면서 나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꼭 이 노래를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아무말 대잔치인 글이라도 써야지!'라고 결심했었다. 다행히 나만의 기록 공간인 브런치에 입문하게 되면서 끝날듯 끝나지 않는 안동시 프로젝트의 준공은 더욱 기다려지기만 했다.


이 안동역이 '그 안동역'은 아니지만요.

 안동역 플랫폼에 있는 편의점에 찾아 갈 때마다 다양한 버전으로 <안동역에서>가 들려온다. 물 한 병을 사러 갔다가도 왠지 귀 기울이게 되는 이 노래.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안동역은 처음 곡이 출시되었던 당시에 노래하던 안동역과는 다른 곳이라는 점은 알고 가야겠다. 옛 역사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2020년부터 현재 버스터미널 옆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즐겨듣던 노래의 분위기만 기대하고 방문했다가 꽤 현대적인 모습에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사람들이 노래만 듣고도 안동을 떠올리고, 안동을 생각하면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매우 확실한 연상을 통한 홍보 효과이니 지금의 안동역이 어떤 모습이든 무슨 상관이랴.


'다 때가 있다'는 말을 믿게 해준 노래라서.

 사실 <안동역에서>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요즘 말로 '역주행' 곡이라는 점이 그 이유인데, 애초에 이 곡은 2008년 안동시가 도시 홍보용으로 발매한 '안동 애향 가요 모음집'에 수록된 곡이라서 가수 개인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이 어려웠다고 한다. 발매한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노래와 목소리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편곡해 알려진 것이 바로 지금의 <안동역에서>이다. 이 곡은 오랜 시간 무명생활을 겪었던 가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주고, 안동시에는 단박에 떠오르는 곡이 되어준 셈인 것이다. 게다가 어디서나 전라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원곡자가 이 곡 덕분에 안동역 명예역장이 되기도 하고, 명예비도 세워졌으니 살아 있는 지역 화합의 장이 아닐 수가 없다. 뒤늦게 창단한 팬클럽 이름도 이 곡명에서 따온 '진성역에서'라니 한 사람을 살리고 한 도시를 살린 '타이밍 좋은' 노래이기까지 하다니.


 나는 이런 스토리가 있는 트로트 곡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다 때가 있구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처음 녹음할 때는 그 누구도 인생역전의 기회가 될 줄 몰랐을텐데, 그저 열심히 묵묵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해온 보상을 받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모든 걸 다 차치하고 노래 자체가 구슬프게 좋은 것도 한 몫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지역의 노래'를 꿈꾼다.

 <안동역에서>가 얼떨결에 안동시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기에는 애초에 시작점이 홍보 목적의 '안동 애향 가요 모음집'이었기에 어쩌면 지역 대표곡을 만들기 위한 계획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뭐 하나만 얻어 걸려라'라는 마인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역을 알리고 싶다면 그런 마음이라도 먹고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지역의 색과 이미지를 가장 잘 알리기 위해서는 '노래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것이 트로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나처럼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도 한 구절만 듣고 그 지역을 떠올리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홍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브런치에서 이런 지역의 색과 잘 어우러진 트로트 곡들에 대해 많이 다룰 예정이다. 노래가 우리에게, 지역에게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가면서 생전 처음 접한 지역도 궁금해지고 친근해지는 경험을 모두에게 공유하고 싶어 시작한 브런치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애정의 시작점에 <안동역에서>가 있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동시 프로젝트 준공과 함께 지역트로트열전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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