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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Aug 19. 2023

EP 10. 빈잔에다 꿈을 채워 마셔버리자

나훈아 - 건배

남은 친구는 몇 명 없지만요.

 '시간 지나면 진짜 마음 맞는 친구 몇 명만 남는다'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워낙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대학 시절의 추억이 전부 '사람'과 엮여 있어서 30대가 되어도 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직장인이 된 이후에 만나는 대학 친구는 몇 명 남지 않았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자 일이 바빠 멀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맞지 않아 멀어지기도 하고, 내 친한 친구와 사귀다가 헤어져서 불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에 치여서 딱 몇 명의 친구들만 만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아롱이 다롱이 각자의 자리에서, 건배

 오늘 만난 친구들이 바로 몇 남지 않는 대학 친구들이었다. 한 명은 마케터, 한 명은 방송작가, 나는 관광컨설턴트이니 정말 아롱이 다롱이 각자만의 일하기도 벅찬 모임이다. 사실 우리의 대학 시절을 요약하자면, 정말 '죽도록 공부 안하던 애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어마무시한 유흥을 즐기고 다닌 것도 아닌데 그냥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친구들은 시험 공부, 자격증 공부 등에 치여서 놀아줄 틈이 없으니 우리끼리 놀러 다니며 우정다짐을 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교수님이 '취직이나 잘 할까 걱정했는데 밥벌이 해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니 더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할 것 같다.

 다행히 우리 모두 밥벌이하는 멋진 어른들이 되었다. 종종 만나는 자리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직, 퇴사, 회사생활, 연애 등을 속속들이 공유하다가도 결국 대학 생활의 추억 이야기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사실 그 때의 우리는 '잘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없이 지낸 것 같다. 남들이 다 취업해서 자기 할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우리도 그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말도 안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어마무시한 미래 계획을 세우고 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평범하게 잘 살자' 정도의 꿈은 품고 살기로 했다. 그저 서로가 말도 안되게 힘든 삶을 택하거나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참견만 해주며 지낼 예정이다. 우리,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 치고는 나름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는 세월에 저 가는 청춘에

너나 나나 밀려가는 나그네

빈잔에다 꿈을 채워 마셔버리자

술잔을 높이 들어라


 나훈아의 <건배>라는 노래가 있다. 술자리가 열리는 이유는 꽤 다양하겠지만, 사실 이유 없이 열리는 술자리도 참 많지 않은가. 이 노래는 그저 편안한 사람들과 모여 신세한탄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상처 받은 친구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우는 친구를 달래주기도 하며 술 한 잔에 힘든 하루를 훌훌 털어버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모여 걸쭉하게 마시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종종 찾아 듣다보니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자꾸만 공감하게 된 듯하다. 특히 빈잔에 술을 채우는 모습을 꿈을 채운다 표현하다니, 술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자꾸만 만들어주는 노래다.

 원곡과 어울리는 걸쭉한 막걸리나 독한 소주가 아닌 하이볼을 선택한 오늘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필수 코스 '건배, 짠!' 시간을 챙기며 이 노래를 떠올렸다. 다른듯 비슷하게 만난 나와 친구들에게 한 잔 술의 의미가 '하루를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루를 털어버리기 위한 힐링'이 되다니. 다음 만남에는 서로의 고민거리가 해결된 상태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술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 꽤 어른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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