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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Sep 18. 2023

EP12. 내친김에 광안대교도 접수를 한다

나훈아 - 기장갈매기

이런 부산은 처음이라

브런치 글쓰기에 소홀했던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프로젝트 준공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리는 중이었다. 항상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내가 이토록 열심히 준공에 목숨 걸었던 건 '9월 셋째 주 주말 부산여행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여가와 취미가 멀어진 만큼 일정에 딱 맞춰 프로젝트를 마쳤고 약 이틀 동안 여행 준비에 몰두했다. 사실 부산은 지금 짝꿍이 살고 있어 스무 번도 넘게 오갔던 도시라 안일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뜻대로 흘러가면 인생은 재미 없는 법. 여행만큼은 분 단위로 계획을 짜야 하는 나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부산은 정말 처음이었다.


우선 알찬 1박 2일 부산여행을 위해 둘째 날 저녁 6시 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 이틀 전 항공사에서 일방적으로 '오전 10시 20분 비행으로 변경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우리는 무려 8시간이나 앞당겨 돌아와야 하는 슬픈 운명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분 단위로 세운 머릿속 계획표가 갈기갈기 찢기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날씨였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자마자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눈, 비 내리는 날의 여행이 한 두번도 아니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만이었다. 하필이면 부산은 엄청난 초가을 물난리를 겪는 중이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도시 부산 속을 거닐어야 했다. 그 흔한 바다 한 번 보지 못하는 부산은 정말 처음이었다.


내가 바로 기장갈매기다

이번 부산 여행은 나의 20년 지기 친구들과 여동생 그리고 짝꿍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했고 그랬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평소에는 짝꿍과 가고픈 아주 소소한 곳들을 찾아 다녔다면, 이번만큼은 친구들과 동생에게 '마, 부산은 이런 곳이다!'라는 마음으로 대표적인 곳들을 소개시켜주고 싶었다. 그 때 마침 접한 노래가 바로 나훈아의 <기장갈매기>였다. 70대 가수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나와 직접 갈매기춤을 추는 모습에 한 번, 내가 좋아하는 부산 곳곳을 담은 가사에 두 번 반해 매일같이 즐겨 들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기장갈매기>에 나오는 명소들만큼은 한 번씩 보여주겠다 다짐하며 해운대, 광안리, 남천동, 서면 등으로 이어지는 알찬 계획을 세웠다.


오늘은 다대포에서 낙조에 취하고

내일은 송도에서 일출에 잠 깨고

내친김에 광안대교도 접수를 한다

내가 바로 기장갈매기다


관광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지역을 노래하는 곡들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갖는 내가 <기장갈매기>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꽤 다양하다. 특히 '짝꿍과 함께 한 곳들을 노래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소개시켜 주고 싶은 곳들이 노래에 녹아 있어서' 좋았다. 비록 두 번째 바람은 이루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언젠가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금 부산에 데려가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때도 <기장갈매기>를 듣고 또 들으며 기분을 내고 코스를 짤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인기있는 여느 여행사의 가이드가 그렇듯 이어폰에 이 노래를 틀어주기도 해야지.



출처 : 유튜브 다날엔터테인먼트 <기장갈매기> M/V 캡처


이게 바로 '지역을 노래하는 노래'

가왕을 넘어 가황이라 불리는 가수 나훈아는 방송에서는 도통 보기 어렵고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하는 가수이기에 팬들의 마음을 더 애타게 만든다. 그런 그가 데뷔 55년차에 접어들면서 중독성 있는 노래와 춤으로 대중 앞에 나섰고 소위 말하는 MZ세대가 열광하는 밈과 챌린지 열풍의 중심에 섰다는 점만으로 <기장갈매기>는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한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는 꽤나 큰 자극제이자 충격이기도 했다. 암만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예술가라지만 70대에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더 의미있고 더 대단하게만 느껴지는 곡이다.


관광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바라본 <기장갈매기>는 평범한 부산 사람들에게는 추억과 반가움을, 관광객들에게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노래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부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누군가가 광안대교가 어떻게 생긴 다리인지, 해운대는 어떤 곳이길래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지, 다대포의 낙조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직접 검색해보도록 할 수만 있다면 이만한 홍보성 곡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던 '지역을 노래하는 노래'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물론 부산광역시가 나훈아씨에게 음원 발매를 요청한 것은 아니니 유사한 사례로 소개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지역의 곡이란 이런 것이라고 슬쩍 힌트를 줄만 하겠다.


아무튼 이번 수원 출신 기장갈매기로서 가이드 노릇은 실패한 여행이었지만, 나름 비가 오기에 운치있었고 계획이 무너졌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디 노래 가사에 따라 알찬 여행을 마친 후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랐던 것과 달리,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글로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기장갈매기>를 따라 더 많은 부산여행을 떠나보겠다는 의리 넘치는 다짐에 집중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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