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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Sep 24. 2023

EP13. 일소일소 일노일노 얼굴마다 쓰여져

신유 - 일소일소 일노일노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몇 년 전, 69억 원의 빚을 진 연예인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했던 말은 지금까지도 꽤 유용한 밈으로 쓰이고 있다. "힘들 때 우는 자는 삼류, 참는 자는 이류, 웃는 자는 일류"라는 말. 개인적으로는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고 울어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모든 일에 단언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그 몇 년간 머리가 조금 더 커버린 나는 힘든 이야기, 불행한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내뱉으며 울어버린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아버렸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며 참고 기다리면 걱정했던 것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간 이렇다 할 어려움이나 걱정 없이 살아왔던 탓일까. 예상치 못하게 눈앞에 닥친 여러 어려움에 어느덧 겸손해진 나를 발견한다.


세상사 스무고개길 좋은 날만 있을까

 유독 인생을 노래하는 가사가 많은 장르가 바로 트로트라는 것을 깨닫게 한 노래가 바로 신유의 <일소일소 일노일노>였다. 보통 인간의 긍정적인 성향이 5라고 가정할 때, 나는 50정도라고 평가받는 사람으로서 이 곡은 그냥 나를 위한 노래라 생각했다.


 이 곡은 트로트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게 되면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곡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 그런 다짐을 했을 때는 나에게 이 노래가 '힘이 되고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큼'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2023년 <일소일소 일노일노>는 김애매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5년차 어른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주문 같은 곡이 되었다.


세상사 스무고개길 좋은 날만 있을까

이왕이라면 웃으며 살자 말처럼 쉽지 않아도

...

한치 앞날 모르는 것이 인생인 것을

그게 바로 인생인 것을

웃다가도 한세상이고 울다가도 한세상인데


 애초에 이 노래는 세상에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한치의 앞날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며 그정도 힘든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거나하게 술을 자신 아저씨들 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영감스러운' 노래라 느껴졌고, 힘든 시기에는 이마저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어느덧 '평생 그렇게 살아보겠노라' 다짐하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 것을

 그 흔한 사춘기도 별일 아닌듯 넘어간 내가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며 '29춘기'를 겪은 한 해였다. 1월부터 소위 '인생 노잼시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접어들었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으며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외부 환경에 의해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나는 소속감과 공동체, 자아실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20대의 반을 학교에서, 반은 직장에서 지내며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렇게 자아와 자존감을 지켜주던 회사가 위기를 맞이하니 오만가지 감정이 들며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애를 쓰는데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기에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회사원이 최고라 자부하던 내가 '이번 달은 괜찮을까?'라는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세상사 스무고개길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라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구비구비 힘든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딱히 걱정 없이 순탄한 20대를 겪던 나의 오만이기도 했다.


 상반기에 들어서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왠지 모를 예감이 들었고, 놀랍게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회사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그 사이에 나는 수많은 불안감으로 인한 노잼시기를 어느정도 극복해냈다. 인생이 재미없다며 울상으로 매일을 보내다가 '그냥 웃으면 된다. 휘말리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자'는 마음을 먹은 것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에 대한 막연한 신뢰감과 무조건적인 맹신이 솟구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무려 3일에 걸쳐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웃지 못할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잘 버텨내고 어느덧 9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보내게 되었다. 역시나 무작정 성내기보다는 일단 여유있게(그런 척) 한 번 웃어 넘기려고 하니 그마저도 어찌저찌 잘 넘어갔으니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비디바비디부, 케세라세라, 아브라카다브라 등등 출처 모를 마법의 주문처럼 나는 특별하게 일소일소 일노일노를 외치며 살기로 다시 한 번 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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