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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Oct 01. 2023

EP15. 안녕하세요, 사장 지망생입니다.

내 꿈은 사장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까지도 서른 쯤에는 사장님이 되고 싶었고, 맘 먹으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로 그 꿈은 물거품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꿈을 잠시 접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에서 만난 사장님들(보통 "대표님")은 생각보다 멋지고 대단한 분들이었다. 나랑은 비교도 안되게.

2. 사회에서 만난 사장님들(보통 "대표님")은 생각보다 입만 살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3. 요즘 세상에는 사장이 '을'이라더니 정말 그래 보였다. 딱히 '갑'이 되고 싶어서 사장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불리한 경우가 많았다.

4. 사장님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서민갑부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다. 딱히 엄청난 부를 노린 건 아니지만.

5. 사장님은 밤낮이 없었다. 현 시점 사장님인 애인의 말에 따르자면, 움직이는만큼 돈이 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했다. 안그래도 워라밸이 떨어지는 일상이라,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 얼마나 철없는 월급쟁이의 다섯 가지 이유인가. 제3자의 겉핥기식 관점에서 바라본 사장님의 삶이란, 어릴 적 어떤 사장이라도 되고 싶던 나에게는 녹록치 않아 보인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 6년차에 접어든 나는 다시 사장님이 되고 싶어졌다. 모순적이게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내 것을 갖고 싶었던 '사장 지망생'

내가 만난 사장님들은 대부분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진짜 내 것을 찾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사장님이 되었다고 했다. 앞서 말한 다섯 가지 이유 이상의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열망을 지닌 분들이었다. 그 열망이 어쩌면 내게도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좋기에 놓치고 싶지 않지만, 아주 작게나마 '내 일'을 하는 창구를 마련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에 흔하디 흔한 N잡러의 삶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아니, 나의 충동적인 면 때문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단 이것저것 지르자"는 마음으로 3초만에 변해버렸다.


일단 나는 사장님, 아니 사업가로서 기본을 갖추지 않은 사람임은 분명하다. 백종원 선생님도 상권분석부터 시작해 이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마당에 나는 그런 고민의 시간을 길게 갖지 않았다. 솔직히 아이템 구상에 꽤 많은 정성을 들인 것도 맞지만, 이것을 논리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손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나?"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걸 진짜 고민이라 칭하기는 부끄럽다. 현실 감각, 논리성, 전문성, 분석력 등은 이미 멀리 내다버린 용감한 가짜 사장은 "내가 잘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특히 마음만 먹으면 해낼 있을 만큼 "많이 해본 것"을 찾아 나섰다. (현재 김애매 한정 "전국 사장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애인이 들으면 극대노할 노릇이다. 일단 다음에 만나면 얼렁뚱땅 말해보기로.)


진짜 나를 찾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일단 해보자'였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르고 본 상태이다. (다행히 본업을 그만두고 전재산을 투자하는 간 큰 사장 지망생은 아니니 너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아직 'TO DO LIST'의 첫 번째 아이템에만 줄이 그어졌고, 그 뒤로는 줄줄이 20가지가 넘는 아이템들이 쌓여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나의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앞서 말한 2번의 사장님처럼 "입만 살아있는 (가짜)사장"일 뿐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브런치에도 아직은 말하기가 난감한 시점이다.


하지만 언젠가 멋진 사장님이 되면 이 글 또한 "이런 말도 안되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까 싶어 일단 남기고 본다. 이토록 충동적이고 대책없는 사장 지망생이지만, 3년 뒤에 한 번 다시 찾아주십쇼, (잠재)고객님들. 제가 뭐라도 이루어놓고 마중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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