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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에게

등나무에게

정정화     

  안녕? 등꽃이 필 무렵이면 네 생각이 간절해지곤 해. 사라져버린 네 모습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질 않는구나. 네가 있던 자리는 주차장이 되어 있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너의 부재에 때때로 슬픔에 빠지기도 한단다.

  내가 너를 만났을 때는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기였어. 다니던 직장을 육아와 건강 문제로 그만두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까지 키운 뒤였던 것 같아. 육아로 정신없는 시기를 지나고 나니 다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게 됐고, 그때 찾은 곳이 도서관이었어. 미래에 할 만한 일을 찾아 공부를 하고, 자료실에서 책을 빌려 읽었어.

  그러다가 도서관 친구들을 만났지. 그중에는 독서회 다니는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내게 자운영 독서회에 들어오라고 했어. 나는 봄 야외 토론 모임에 함께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어. 야외 토론 장소는 동리목월문학관이었단다. 그날 김동리 작가와 박목월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훑어보고, 야외에 전시된 시화전을 감상하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됐어.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직장 생활을 했던 거였어.

  공부와 더불어 독서회에 가입해서 책도 꾸준히 읽었어.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지도강사를 하면서도 한 달에 한 권씩 독서회 책은 빠트리지 않고 읽었지. 도서관 친구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나도 열정을 갖고 했던 것 같아.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에 등나무 밑은 좀 외진 곳이었어. 그래서 공부하던 친구들과 모여 삼겹살도 구워 먹고, 칼국수도 끓여 먹고, 도시락도 먹곤 했지. 햇살이 보라색 등꽃 사이로 비칠 때 포도송이처럼 흔들리는 꽃들이 얼마나 빛났는지 몰라. 지금 생각해도 현란한 네 몸짓이 생생하게 떠올라.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삼겹살은 너와 안 어울리긴 해. 그런데도 우린 정말 맛있게 먹었어. 사계절이 다 좋았지만, 등꽃이 필 때가 가장 예뻤어. 그 황홀한 보랏빛의 출렁임이라니…….

  혼자일 때는 친구가 되어주었고, 여럿과 함께일 때는 그늘이 되어 주었던 너. 지금은 어느 곳으로 이사해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나는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단다. 2015년에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됐어.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네가 친구가 되어준 덕분이야. 봄날 바람에 살랑거리던 꽃 향을 떠올리면 힘든 일도 잊을 수 있었거든. 간들거리는 꽃송이와 푸른 잎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야.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어떤 근심도 사라져 갔어. 다시 한 번 네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살랑대는 꽃송이를 볼 수 있다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던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마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날 찬란하던 보랏빛 꽃잎, 여름날의 강인한 잎맥, 가을날 조롱조롱 매달린 열매들, 햇살에 자리를 내어주는 겨울날의 휘감아 얽힌 줄기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때가 없었어. 지금도 너를 생각하면 많이 그리워. 나도 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도 주고, 휴식처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네 생각하며 좋은 글 쓰도록 애쓸게.

  나무야, 내 맘속의 등나무야! 힘들었던 때를 함께 건너 준 고마운 친구야!

보고 싶다, 많이…….     

2021. 등꽃 피는 봄날에     

            친구 정화가


P.S. 기억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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