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 내 상선 보호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해협을 봉쇄하는 등 이란의 거센 저항에 유가가 치솟자 도움을 청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함께하지 않는 동맹국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참여 여부를 기억하겠다"고 발언했다. 협력하지 않을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무역법 제301조 조사를 비롯해 광범위한 경제 분야의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사실상의 협박이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먼 타지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안보와 직면한 것임을 실감한다.
중동 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대한 분노' 작전 이후, 이란의 저항이 미국의 예상 범위를 넘어서면서 전쟁의 목적 또한 불분명한 상황이 이어진다. 미국은 지난 1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고 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스를 중심으로 한 친미 정권을 세운 바 있다. 이러한 '베네수엘라 모델'을 이번 이란 작전에 이식하고 했지만 여의치 않다. 폭사한 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자국민 3만여 명을 죽인 '학살자'에서 외세의 개입에 장렬히 희생한 '순교자'가 됐다. 정치, 군사의 중심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를 새 최고지도자로 옹립하며 충성을 바쳤다.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저항의 축'도 새 지도자에 충성을 바치며 중동 내 미군을 위협 중이다. 최고지도자를 제거하고 친미 인사를 중심으로 한 정권 교체를 단행해 단기간에 마무리하려 했던, '전쟁 영웅'이 되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이미 무너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중동 위기는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오히려 족쇄로서 발목을 잡았다. 자신의 함정에 자신이 빠진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이 막히면서 유가는 단번에 100달러 선을 넘었다.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면서,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케빈 워시를 통한 금리 인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채 금리 상승으로 지불해야 할 이자 비용도 불어난다. 전 정권보다 '경제는 잘했다'라며 자화자찬했던 대통령은 무안한지 '우리는 승리 중이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면서 주변국을 자신이 빠진 함정으로 유도한다. 뻔히 보이는 함정이기에, 무역법 301조를 앞세운 광범위한 경제 제재로 강제한다. 함정에 빠지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중동 위기에 스스로 뛰어드는 우를, 빠지지 않으면 관세를 비롯한 경제 제재를 받는,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기차길 문제와 유사하다.
어디로 향하든 국익이 분명하지 않다. 아니, 없다 해도 무방하다. 어떤 상황이든 국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리 외교', 우리만 위기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는 '중립주의'가 위태로운 이유다. 예상 범위 내에서는 '이상'이지만, 불확실성에서는 '허상'이 된다. 국제 질서는 '1+1=2'가 아니다. 하나의 변수에 모든 것이 흔들릴 수 있는, 정해진 답이 없는 식이다. 답이 없기에 "'실리'만 추구하는 게 정답이다"라는 세간의 인식은 위험하다. 정부도 이를 알고, 군함 요구에 '美와 긴밀히 소통 중'이라는 말로 얼버무리지 않았을까.
결국 국제 질서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며, 평시의 '실리 외교'나 '중립주의'라는 이상은 고도의 불확실성 앞에서 허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라는 함정이 눈앞에 놓였다면, 단순히 파병 여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정부의 선택지를 좁힐 것이 아니라 그 함정 자체를 역이용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군함 파견의 대가로 무역법 301조의 완전한 면제나 방위비 협상의 우위 선점 같은 실질적인 '청구서'를 미국에 당당히 내밀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맹목적 응원이 아니라, 정부가 벼랑 끝 대치 상황을 지렛대 삼아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냉철하고도 기민한 '전략적 공간'을 열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