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휴대전화

KBS <다큐인사이트>를 보며

by 오레오나오레오

최근 KBS <다큐인사이트>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다뤄졌다. 제목은 '불안탐구 2부작, 버닝'. 휴대전화라는 새로운 통신기기의 등장으로, 급변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뤘다. '비대면'으로 인한 관계 절단. 사실 '비대면'이라는 용어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우리 사회를 잠식했다. 약속을 잡기 위해 친구가 사는 아파트 동의 인터폰을 누르던, 동네 놀이터만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던 '과거'는 '추억'이 됐다. 필자는 24살, 과도기에 해당하는 세대임에도, 이러한 기억은 마치 역사서에서 볼법한, <응답하라 1988>과 같은 머나먼 과거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비대면'은 10년 안팎에 불과함에도 '대면' 사회였던 14년의 기억은 상상조차 안된다.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휴대전화를 갖고 나온, 마치 신이 준 선물과도 같다.


하지만 신이 준 건 '선물'이 아닌 '시험'인 듯하다.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인 사과를 놓고 평가를 받았듯, 우리 또한 휴대전화를 두고 같은 시험을 보는 듯하다. 휴대전화는 선악과처럼, 명과 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비대면'을 통해 일의 효율성과 신속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대인간의 관계 형성, 인내심 등 인간의 본질은 그 쓸모를 잃었다. 과거엔 재밌는 프로그램이 TV에 동시에 방영되면, 어떤 것을 볼지 동생과 논의하곤 했다. 하루 내가 양보하면, 다음 날은 동생이 양보하는 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부모님과 대화를 하며 하루의 일상 경과를 얘기하곤 했다. 걱정을 얘기하면 부모님의 경험에서 우러난 갚어치 있는 조언을, 즐거운 일엔 가족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공감의 자리였다.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은 다음 날 친구들 사이의 얘깃거리가 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떻게 보면 삶에서 친구, 가족 등 타인이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다르다. 타인보다는 자신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각자 휴대전화가 있기에, 굳이 양보를 하거나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참을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대화가 휴대전화의 SNS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내가 원할 때 읽고 답장하며, 싫어하는 상대는 카톡방을 나가거나 차단함으로써 제거한다. 식사 자리에서도 각자 휴대전화를 보기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막상 대화를 하려니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현실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대인관계 능력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이를 키울 경험이 부족해지다 보니 본인 위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대인관계의 필요성을 못 느끼니 뇌마저 불필요함을 토대로 퇴화시키는 건 아닐까?


인공지능(AI) 시대는 이러한 우려를 더 키운다. 챗GPT, 제미나이 등 범용AI는 사용자의 말에 무조건적 공감만을 한다. 이른바 '아첨형 AI'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통계적으로 AI 모델은 사용자의 잘못된 주장을 인간보다 47~49% 더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의 체류 시간과 사용 빈도를 늘리고자 AI의 공감 기능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다. 여러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타인과의 대화보다 무조건적 공감만을 해주는 AI와의 대화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 능력을 사라지고, 본인 위주로 주장하는 고집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대인관계의 '인(人)'자가 사라질 위기다.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먹고, 그 죄로 인간 세계로 쫓겨나 노동을 해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휴대전화라는 선악과를 남용한 죄로 관계 단절이라는 벌을 받았다. 대인관계기능이 성숙해지는 시기에 휴대전화를 멀리할 필요성이 있다. '미래'가 '과거'보다 무조건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사회에 적응하고 대응해왔다. 휴대전화 사용 가능 연령을 높이는 규정을 우리 사회가 한번 쯤은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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