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공감과 《주역》/군자지과君子之過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몰두해 처음 완성한 것이 《주역사전》이었다는 것을 보면 그도 아마 큰 허물을 없애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정약용은 《주역》의 핵심을 ‘회悔’와 ‘인吝’으로 보았다. 즉 뉘우침[悔]과 인색함[吝]인데, 정약용은 《주역》에서 대표적인 점사占辭인 길·흉보다 회·인에 관심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회를 더 주목했다.
정약용이 회와 인에 관심을 둔 것은 사암의 중형仲兄 손암 정약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손암이 회悔를 각별하게 여겼다는 것은 매심재每心齋라는 재호齋號를 사용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매심每心’이라는 것은 회悔의 파자로, 회는 재호를 삼을 만큼 정약전에게 중요한 삶의 태도이자 지향점이었다. 정약전은 사암에게 매심재에 대한 기문記文를 부탁하면서, “매심이라는 것은 회인데, 나는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그 뉘우침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실을 이렇게 이름 붙였으니, 네가 기문을 써라”라며 재호를 지은 이유를 설명한다.
정약용은 <매심재기每心齋記>에서 “인색하다는 것은 뉘우치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吝者不悔之云也”, “《주역》은 허물을 뉘우치는 책이다周易悔過之書也”, “64괘 중에서 많은 것이 회와 인으로 상象을 세웠다六十四卦多以悔吝立象”라고 하면서, 《주역》의 대의大義가 회·인에 있다는 것을 내비치며 정약전과 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공유했다.
공자가 《주역》을 “무대과無大過”의 책으로 보았고, 정약용은 회과지서悔過之書로 보았다고 해서, 지금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반드시 《주역》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공이 한 말의 핵심은 군자의 허물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어 있으니, 허물이 생겼다면 고쳐서[更]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실수하는 인간 또는 실수할 수 있는 인간, 이것이 《주역》의 인간관이다. 그저 빠른 인정과 갱신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