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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chojae Aug 14. 2021

당신의 미운 아기 오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미운 아기 오리에 대한 이야기

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막연한 불안감은 항상 있었다.


그 아이는 또래의 여느 아기오리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 어떤 새보다 하늘을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어 했다. 모두가 곤히 잠든 밤에도 혼자서 날개 짓을 연습하며 유난을 떨었다. 드 넓은 하늘에서는 목청이 커야 한다며 옆집에 사는 수탉을 찾아가 울음소리 내는 법을 배웠다. 저 녀석이 도대체 왜 저러지? 평범한 오리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상인데. 늪지와 연못 그리고 농장 주변을 하루 종일 열심히 돌아다녀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고 공허하기 만한 하늘에 왜 그리도 집착을 하는 건지...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그 아이 역시 나의 소중한 자식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응원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남다른 모습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재단하는 어르신들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듬어 줄 용기까지는 나에게 없었다. 

‘아니 그 녀석은 도대체 왜 그런디야? 날개 짓 연습할 시간에 물고기 잡는 법이라도 배울 것이지..’ 

‘어르신 그러게요.. 저도 도통 이해가 안 간답니다. 또래 아이처럼 자랐으면 좋겠는데.. 크면서 바뀌겠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도 내 속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불안함 너머에는 내가 생각해보지도, 가져보지도 못했던 그 무언가가 펼쳐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오롯이 응원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초 가을날,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우리가 사는 늪지 근처에는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대부터(아니 사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며 살아가는 수리부엉이들이 살고 있었다. 어찌나 사악한 녀석들인지, 아마도 인간 다음가는 우리의 천적임이 분명했다. 이 녀석들은 낮에는 병든 암탉처럼 잠만 자다가도 해가 진 후에는 미친 듯이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는 밤만 되면 그들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쥐 죽은 듯이 둥지에서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푸드덕푸드덕~' 미약하게나마 우리를 보호해 주던 적막을 가로로 찢어내고 들려오는 날개 짓 소리는 수리부엉이들에겐 둘도 없는 표적이 되었다. 소리가 나는 곳엔 그 아이가 열심히 날개 짓을 연습하고 있었고, 그곳을 향해 사납게 생긴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입맛을 다시며 돌진하고 있었다. 

‘안돼! 아가야 얼른 도망가!' 

순간 내 곁을 스치며 검은 그림자가 그 아이를 향해 달려 나아갔고, 보잘것없는 부리와 발톱으로 그 사나운 수리부엉이와 맞서 싸웠다. 애들 아빠는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고, 그의 간절함은 수리부엉이의 배고픔보다 절실했는지 끝내 수리부엉이를 쫓아냈다. 그리곤 몸을 바들바들 떨며 이내 곧 쓰러졌고 이웃 오리들이 모여들어 그를 감싸 안았다. 어두웠던 세상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내 주변의 어르신들과 다른 아이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고함을 질러 댔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땅바닥이 곧추서더니 나의 뺨을 갈기며 덮쳐왔다. 나에게는 더 이상 그 아이를 응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가.. 엄마가 미안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아기, 엄마가 지켜주고 싶은데 엄마도 더 이상은 힘들구나. 어쩌면 여긴 네게 어울리지 않는 곳인지도 몰라. 어딜 가든 엄마가 항상 응원한다는 것 잊지 말고… 엄마가 네 엄마여서 미안해…’ 

그 아이는 힘차게 껴안으면 부서질 것 만 같은 작고 왜소한 날개를 가졌지만, 이미 창공을 가로지르는 보라매의 눈을 하고 있었다. 슬프긴 하지만 모두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아니 연민의 눈빛으로 날 한동안 바라보더니 어두운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초 가을의 바람은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다.

‘애기 엄마, 너무 낙담하지 말어. 그 녀석은 애초에 버렸어야 할 놈이야. 애들 아빠 일은 안타깝지만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하마터면 가족 전체가 그리 될 줄 어떻게 알아? 더 큰 일 나기 전에 오히려 잘된 거야.’

‘그래 엄마. 이제 곧 겨울이 닥칠 텐데. 그만 슬퍼하고 우리 얼른 먹이도 구하고, 둥지에 깔 갈대도 모아야지. 우린 오리야. 날 수도 없는데 하늘을 왜 쳐다보냐구..’


풍요로운 계절이 지나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람은 이내 살을 에는 듯한 삭풍으로 바뀌었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온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굶주린 수리부엉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우리들을 찾아 헤매었고, 추위를 피해 물고기들은 더욱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탐스러운 과실과 이파리들이 달려있던 초목들은 생기를 읽고 바싹 말라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가 우리를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버텨나갈 뿐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혹독한 겨울도 그렇게 지나가고 햇볕은 조금씩 따사로워졌다. 무사히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지만, 겨울을 나면서 나는 여섯 마리의 아이들 중 세 마리를 추위와, 수리부엉이와, 굶주림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어르신들은 말했다. 그 정도면 엄마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오리의 삶은 그런 거라고.. 그 아이가 떠나간 후, 마음 한 켠의 불안함은 분명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라진 자리에는 평온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없는 헛헛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까마귀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로 찾아왔다. 그녀는 온 대지가 펄펄 끓어오르는 여름이든, 세상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는 겨울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열심히도 돌아다니는 탓에 보고 듣는 것이 많았고 그만큼 오지랖도 넓었다.

‘이봐요 오리 엄마! 아 왜 그 있잖아. 맨날 하늘만 바라보면서 날개 짓하던 당신 자식 말이야. 걔 이야기 들은 적 있수? 내가 말이야 겨우내 그 녀석을 자주 보기도 했고, 다른 까마귀들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는데 말야…’ 

까마귀가 내게 들려준 그 아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 아이는 우리가 살던 늪지대를 떠나 하염없이 숲 속을 헤매었다.


그러다가 수컷 기러기 한 쌍을 만났다. 기러기들은 그 아이의 날갯죽지와 털색을 보고는 아기 기러기인 줄 알고 함께 날아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 아이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뜻이 기뻤지만, 자기 키만큼 점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러기들은 주변을 맴돌며 기다렸지만, 그 아이는 끝내 날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러기들은 사냥꾼의 총에 맞아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그 아이는 희망이 사라지는 절망을 느끼기도 전에 사나운 사냥개들을 피해 풀숲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냥개의 자취가 사라지자 그 아이는 또다시 헤매다가 어느 가축우리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노파와 고양이, 닭이 살고 있었다. 황량한 숲 속보다는 나았지만 그들의 텃세는 그 아이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었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니? 오리면 그 털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던가. 아님 닭처럼 매일 맛있는 알을 달란 말이야! 하늘을 날 거라고? 푸하핫.. 내가 사냥개들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게 훨씬 빠르겠는 걸?’ 고양이는 이죽거리며 괴롭혔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쫓기듯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바람은 조금씩 차가워졌고, 그럴 때마다 그 아이의 날갯죽지는 간지러웠고, 털은 수북이 빠져나갔다. 한 번은 배고픔과 추위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길을 걷다가 연못에 빠지고 점점 얼어가는 물속에서 빠져나올 기력도 없었다. 때 마침 지나가던 농부가 구해줬으나, 멸시만 받고 살아온 그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있는 힘을 쥐어짜 도망갔다. 


까마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그 아이를 포기해서 그렇게 힘들구나. 어렴풋이 그 아이에게 바랐던 그 무엇은 결국 절망이었구나..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아이가 글쎄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이 봄까지 살아남았다지 뭐야? 심지어 몸짓도 커지고, 털색도 멋들어지게 새하얀 색으로 바뀌었데..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백조 무리들하고 어울려서 여름이 시원한 북쪽 나라로 날아갔다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 그 아이, 오리가 아니고 백조였던 모양이야. 오리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야?’


온몸이 떨렸다. 기뻐서 날아오를 것만 같으면서도, 슬퍼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 아이가 옳았다. 하늘만 바라보고, 그 하늘을 동경하던 그 아이는 그렇게 백조가 되었다. 아니 원래 백조가 될 아이였다.

그럼 나는? 그 아이를 불안해하면서도 남몰래 응원했고, 무언가 어렴풋한 꿈을 꾸었지만 결국 떠나보내야 했던 나는? 그저 하루하루, 한 계절 한 계절을 버티어 나갈 뿐인, 오리의 삶을 사는 나는?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은 세 마리의 아이들을 다독이며 오늘도 그렇게 둥지에 숨어서 잠들 뿐이었다.


한참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어둑한 밤이었다. 


내 옆에는 귀여운 다섯 살배기 딸아이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고, 내 손에는 ‘미운 아기 오리’ 그림책이 들려 있었다. 동화책을 딸아이에게 읽어주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천사처럼 자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공허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놓쳤고 다시는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허무함이 이런 기분일까.


딸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서재를 향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서재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는 중학교 1학년 때 쓰던 일기를 꺼냈다. 십 수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자 파스텔톤의 하늘색으로 칠해진 커버는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고 있는 듯했다. 기분이 한결 편해졌다. 책장을 펼치자 코 묻은 손으로 쓰인 어린 시절의 내 꿈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미운 아기 오리가 아닌 백조이고, 나는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졌다.  그 순간 내 맘속의 허무함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PS> 당신의 미운 아기 오리는 지금 어떤 하늘을 날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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