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도 때도 없이 뭉클해지는 편이다.
지난 금요일 새벽 시간에 글쓰기 합평을 마치고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하는 중에 갑자기 명치끝부터 뒤틀리는 느낌이 들면서 배가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다. 종종 앓던 위경련 통증이었다. 나의 경우 위경련이 순간적으로 강하게 와서 허리를 피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데, 이 날도 식은땀이 나고 하늘이 노래져 싱크대를 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상비하고 있던 약을 바로 찾아 먹고 일단 침대로 가 누웠다.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는 중에 아이들이 깰 시간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에 엄마가 안 보이니 큰 아이부터 나를 찾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 괜찮냐며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기가 아침에 먹을 걸 고민해 볼 테니 걱정 말고 누워 있으란다. 곧이어 작은 아이도 기상해서 엄마를 외치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 “어엄마~ 어딨니~~”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치며 집을 돌아다니다 나를 찾아내고는 갑자기 눈이 동그래진다.
작은 아이: “엄마 어디 아파? 왜 그래?”
나: “응. 배가 많이 아파서 지금은 좀 누워있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작은 아이: “아니야~ 안 미안해해도 돼~ 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 다 할 수 있어. 걱정 마. 엄마”
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인다. 누나와 함께 빵과 우유를 챙겨 먹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옷을 입고 가방까지 딱 메고 나타나 본인이 학교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픈 거 사라지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곤 씩씩하게 등교를 했다. 시간이 좀 지나 통증도 줄고 정신이 드니 아침의 일이 아득했다.
큰 아이의 걱정 가득한 눈빛과 이마를 짚어주었던 손길… 작은 아이의 동그래진 눈과 의젓하게 혼자 등교하던 모습이 꿈처럼 느껴지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아침의 뭉클한 감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뭉클이 온다. 작은 아이 하교 시간이다. 아직 학기 초라 부모님들이 학교 앞에 많이들 나와 계신다. 일을 하던 중에 아이를 마중하러 잠시 짬을 낸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집에서 아파 쉬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곧 학교에서 나올 아이를 기다리는 표정이 다들 얼마나 밝은 지 모른다. 때마침 어린이들이 자기 등 만한 가방을 메고 조잘거리며 중앙 현관을 걸어 나온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엄마를 향해 달려가 안긴다. 그 많은 어른들 틈사이를 비집고 자기 엄마를 잘도 찾는다.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은 통통 튄다. 달려가는 그림자도 예쁘다. 세상에 이렇게 특별한 관계가 어디 있을까 싶다.
잠시 찾아온 뭉클함을 넣어두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학원도 데려다주어야 하고, 짬짬이 책도 읽고 저녁메뉴도 정해서 밥도 해야 하고… 아이와 나를 챙기느라 분주하다. 휘몰아치듯 정신없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남편에게 카톡이 온다.
‘들어갈 때 뭐 사갈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름 혼밥도 실하게 잘 챙겨 먹는 편인데 늘 그렇게 내 끼니를 챙긴다. 신혼 때부터 늘 그렇게 한결같이 묻는다. 할 말이 그리 없나?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오늘 하루 애들하고 힘들었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애들만 챙겼을까 봐. 난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 사랑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 짧은 문장에도 그만 뭉클해져 버리고 만다.
한 때, 나는 왜 시도 때도 뭉클 해지는가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넘어갈 법한 일에도 왜 괜스레 마음이 일렁이는지, 내 마음이 너무 단순한 건 아닌지… 너무 쉽게 설레고 심쿵하고, 섣불리 감동하고 북받치는 것 같아 내 감정의 얄팍함에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어떤 이는 아직 세상의 쓴맛을 못 봐서 그렇다며 철부지 보듯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세상 참 속 편하게 산다며 그리 살아 좋겠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들의 가시 돋친 말들이 쓰리고 아팠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타인을 만나면 장점만 보이고, 힘든 일도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잘 될 거라는 마음으로 상황을 좋게 보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면 어김없이 가까운 지인들이 슈퍼맨처럼 나타나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 준다. 괜찮아질 거라며 안아주면 힘이 난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늘 감사를 마음에 담았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 뭉클함은 어쩌면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까지 싱싱하게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드라마 해방일지에서 하루도 온전히 좋은 날이 없다는 구 씨에게 염미정이 건넨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 하자나.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어쩌면 뭉클함은 내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이지만 그 감정은 제법 오래 간직된다. 다시 꺼내어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오늘도 뭉클한 순간을 모아 살아간다. 행복을 차곡차곡 쌓는다.
#글쓰기훈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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