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의 라면이 23724번의 밥을 이겼다

일상에세이

by 이민정


여태 내가 먹은 끼니 수는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유식을 졸업하고 정말 밥 다운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를 기준으로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었다고 가정하면 41610 끼니 정도의 식사를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도 나는 밥을 잘 챙겨 먹는 편이라 이 계산은 상당히 타당할 것이다. 4만여 끼니를 먹는 동안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면, 바로 누군가 차려준 식사를 먹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식사를 차려주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 중, 누군가 나를 먹이기 위해 정성껏 차려준 밥상의 기억이 나를 이루는 데 더 영향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디테일한 계산을 해보고 싶었다. 결혼 전까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며 살았던 시간이 28년인데, 점점 자라 학교 급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집 밥을 조금 덜 먹게 된 시기를 감안하고 얼추 계산해 보아도 대략 23725 끼니다. 어마어마한 양을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는 이야기다. 부모님이라 언급했지만 실제로 아빠보다는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훨씬 더 많이 먹었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면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셨던 반찬과 요리들이 줄지어 생각난다. 아직도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요리 몇 가지는 만드는 과정까지도 생생하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어묵인데, 어묵은 동태살과 오징어, 새우를 갈아 몇 가지 야채를 다진 것과 섞고 계란을 넣고 양념을 한 뒤, 잘 반죽해 기름에 튀겨내어 만들어낸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요리하시는 과정을 바라볼 때가 많았고, 엄마의 숙련된 칼질과 각종 조리도구의 쓰임은 계속 봐도 신기해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있다. 갓 튀겨져 나온 어묵을 손으로 집어먹을 때의 그 맛 또한 잊을 수가 없었다. 뜨겁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맛이다. 한 개라도 더 먹으려 볼이 터지게 집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봄이면 각종 나물 반찬을 만들어 주셨고, 여름엔 얼음과자를 얼려 주셨다. 가을엔 집에서 호호 불며 까먹던 군밤이 떠오르고, 겨울엔 군고구마에, 만두까지 직접 빚어 간식으로 쪄주셨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정성껏 나를 먹이고 키우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를 먹고 살린 커다란 힘은 아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아빠가 직접 음식을 해주셔서라기보다 내가 갖게 된 식습관이라던지, 개인적인 입맛 같은 전반적인 식문화가 아빠를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집에서 먹었던 음식들의 추억이 가득한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 집에서 만든 음식들이다. 집에서는 인스턴트 음식을 거의 접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아빠의 확고한 식탁철학 덕분이었다. 한식 식단을 고집하셨고, 야채를 많이 먹고, 인공적인 것들은 멀리하길 원하셨고, 저염식의 건강한 음식들을 먹어야 사람이 건강해진다 생각하셨다. 그리고 바깥음식보단 집밥이 좋다고 철석같이 믿으셨다. 지금의 내가 한식을 선호하고 집밥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란 걸 보면 그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서 먹는 밥을 좋아하고 잘 먹었던 나도 바깥세상의 인공적인 맛에 눈을 뜨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초등학교 5학년때 영어학원에서 처음으로 컵라면 맛을 본 순간이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동네슈퍼에서 농심 큰 사발 새우탕을 사서 학원 정수기로 물을 받고 3분 정도 기다렸다 먹었는데, 정말 눈이 튀어나올 뻔한 충격을 받았다. 혀끝에 닿는 그 자극적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잔치국수와 칼국수만 먹어 보았던 나로서는 정말 너무너무 새로운 맛이었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느냐고 100번은 말한 것 같았다. 그날 집에 와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만 컵라면을 처음 먹어봤더라.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못 먹게 했느냐. 나도 라면이 먹고 싶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자고 부모님을 졸랐다. 처음으로 음식 투정을 하던 나를 가만히 보고 계시던 아빠가 직접 나서서 라면을 끓여 주신다고 하셨다. 엄마와 나와 동생 모두가 놀랐다. 우리가 아는 아빠는 그러실 분이 아닌데… 이상스레 여기면서도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기대하며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져 나올 라면을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빠가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는, 4 등분한 양파를 툭툭 넣고 끓이기 시작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궁금했다. 양파 라면인가? 뭐지? 왜 양파를 끓이지? 양파를 저렇게도 먹을 수가 있나? 그리고 더욱더 이상한 말씀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양파가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삼십 분쯤 후에 라면을 끓이겠다는 것이다. 우린 영문을 모른 채로 기다렸다. 정말 아빠는 삼십 분 후쯤 나오셨고, 양파를 삶은 물에서 양파는 건져내고, 양파가 목욕한 물에 라면을 넣고 라면스프는 정확히 반만 뿌리고 나머지는 버리셨다. 기다렸던 우리 집 첫 라면은 그렇게 삼십여분 만에 완성되었다.

모름지기 라면이란 3분이면 완성되는 쉽고 빠른 식사의 대명사 아닌가? 라면이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 음식이었나 라는 의심 속에서 한 젓가락 입에 넣었는데...

오 마이 갓!

학원에서 먹었던 그 맛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고 너무 맛이 없었다. 자극적인 맛은 온데간데없고 밋밋하고, 끝 맛은 달큼하기까지 했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시무룩한 나를 보며 하시는 말씀이 라면은 기름기가 많아서 이렇게 끓여야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아빠! 건강하려고 라면을 먹나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빠가 끓여 주신 라면을 꾸역꾸역 먹었고, 그 뒤로 다시는 라면을 먹자고 하지 않았다.
아빠가 끓여준 라면 한 번이 엄마의 20000끼를 이겨버렸다. 이 밋밋하고 맛없는 라면이 엄마의 다채로운 요리를 제치고 가장 먼저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빠가 만든 식탁 문화가 정착한 우리 집 식생활과 입맛을 그대로 지금도 갖게 되어버린 나이기에 그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양파까지 삶지는 않지만, 여전히 스프는 절반만 넣고 끓여 먹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나는 오늘도 친구를 만나 파스타보다는 밥을 먹자 주장하고, 식구들을 먹일 저염식 식단을 고민한다.


#글쓰기훈련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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