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벽을 마주하다.
11장. 세상의 벽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유치원에서 규칙을 따르지 못하며 돌발행동이 나올 때, 주변의 시선은 곧장 우리에게 쏠렸다.
어떤 부모는 눈살을 찌푸렸고, 어떤 이는 핸드폰으로 우리를 힐끔 보았다.
한 번은 아이가 키즈카페에서 장난감을 크게 던졌을 때, 한 아주머니가 “그런 기본적인걸 왜 안 가르치느냐”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바로 죄송하다 사과를 했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아이를 바라보다 나를 바라보며 "엄마가 기본적인 것도 교육 안 시키고 어디 모자란 아이면 집에서 얌전히 키워라 사람들 많은 곳에 데려와서 민폐 끼치지 말고" 라며 분노하셨고 나는 그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린이집 면담에서는 더 복잡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좋은 뜻에서 돌려서 조언을 하셨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좀 더 이끌어 주셔야 해요.” “아이가 호명반응이 거의 없어요”“충동적인 돌발행동을 보입니다.” 그 말은 그때 당시 나에게는 ‘엄마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들렸고, 내 눈앞의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행정적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 여러 기관을 찾아다녀야 했고, 서류와 진단서를 챙기는 일은 피로를 더했다. 남편은 매일 일하러 나갔고, 나는 아이와의 치료 일정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제적 부담은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왔다. 치료 비용, 특수 수업료, 이동과 대면에 드는 시간 비용까지, 모든 것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가장 아프게 다가온 것은 사람들의 무심함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의 편견은 때로 직접적인 상처가 되었다.
나는 그 상처를 감내하며 아이의 옆에 서 있어야 했다.
어떤 날은 견디기 어려웠고, 어떤 날은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 치료를 위해 방문한 센터 대기실에서 어떤 어머님이 살포시 손에 사탕하나를 쥐어주시며 “엄마, 힘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날 밤 내내 그 말에 기대어 울었다.
나는 서서히 관련 모임과 지원 단체를 찾아 나섰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들은 각자의 상처와 싸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지탱해 주는 따뜻한 손이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를 외부의 벽으로부터 지켜주는 작은 방풍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바깥의 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벽을 마주하며, 매일 작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