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바다처럼 품는 사랑

3.고래 상어 인형

by 만두콩

바람 소리에 울던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아이를 ‘내가 끌어내야 할 존재’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아이가 두려움 속에서도 잠시 기대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다른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강하게 의지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늘 품에 안고 다니는 고래상어 인형이었다.

처음 그 인형을 집에 들여놓은 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다른 장난감들과 함께 선물로 받은 것 중 하나였는데, 아이는 유난히 그 인형을 고집스레 안고 다녔다.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고, 색도 바래고, 봉제선이 풀려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나왔지만, 아이는 절대 그 인형을 놓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으로 더듬어 인형을 찾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도 옆자리에 앉혀 두었다. 심지어 목욕할 때조차 품에서 떼어내지 않으려 해, 나는 아이가 잠든 뒤 몰래 빨아 말려 두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 집착이 걱정스러웠다. ‘왜 이렇게 인형에만 매달릴까? 혹시 더 세상과 멀어지는 건 아닐까?’ 나는 속으로 불안해하며, 아이의 손에서 인형을 떼어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눈물이 터져 나올 듯한 얼굴로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 절박한 모습 앞에서 나는 결국 다시 인형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달았다. 그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의 세상을 지탱해 주는 방패이자, 두려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낯선 공간에 들어갈 때 아이는 늘 불안해했지만, 고래상어 인형을 품에 안는 순간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새로운 사람 앞에서는 몸을 굳히고 시선을 피했지만, 인형을 꼭 끌어안으면 심장이 뛰는 속도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 보였다. 큰 소음이 울려 퍼질 때도, 아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인형에 얼굴을 묻고 버텼다. 인형은 단순히 천 조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아이의 두려움을 흡수해 주는 그릇이자, 아이를 다시 안도의 자리로 불러들이는 열쇠였다.


나는 그제야 내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인형을 대신할 수 없었다. 아이가 인형을 품고 세상과 맞서는 순간, 그 방패는 아이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패가 더 오래, 더 든든히 아이를 지켜줄 수 있도록 돌봐 줄 수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형을 소중히 다루기 시작했다. 세탁할 때는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몰래 밤에 빨아 햇볕에 바짝 말렸다. 실밥이 터져 나올 때는 바늘과 실로 조심스레 꿰매며, 마치 아이의 상처를 보듬듯 정성껏 고쳐 주었다. 내가 인형을 돌보는 건 곧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일과 같았다.


특히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아이가 새로운 치료실에 들어가야 했을 때였다. 낯선 환경, 낯선 얼굴들, 낯선 소리들. 아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오히려 아이는 더 세게 버텼다. 그때 아이 품에 안겨 있던 고래상어 인형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잡는 대신, 인형을 두 손으로 꼭 끌어안았다. 아이는 놀란 듯 잠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신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형을 붙잡고 있는 내가 곧 아이의 두려움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신호가 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인형을 통해서조차 아이는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인형을 ‘아이의 집착’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의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었고, 내가 그 연결을 존중하는 것이 곧 아이를 존중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말한다. 인형이 아이의 방패라면, 나는 그 방패를 끝까지 지켜주는 든든한 그림자가 되리라고. 아이가 고래상어 인형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버틴다면,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인형이 해낼 수 없는 순간을 대신 품어내리라고.


그리고 나는 믿는다.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세상을 홀로 마주하게 될 때, 고래상어 인형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곁에는 언제나 나도 있을 것이다. 인형이 품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내가 함께 안아주고, 인형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내가 다가가 아이의 어깨를 지켜줄 것이다. 그것이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자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