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다처럼 품는 사랑

2. 바람 소리에 울던 날

by 만두콩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조금은 새로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는 내 눈을 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 옆에 와서 앉았고, 옷자락을 잡으며 나를 느꼈다. 나는 눈빛만이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깨달음은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여전히 예기치 못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감각적으로 예민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예민함이 어떤 방식으로 삶에 스며드는지, 그것이 얼마나 아이를 흔드는지 체감하는 순간마다 나는 무너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바람 소리에 아이가 무너져 내렸던 날이다.

그날은 특별한 날도, 큰 사건이 있던 날도 아니었다. 평범한 오후였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이는 거실 바닥에 앉아 익숙한 자동차 장난감을 손끝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장면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창문을 세차게 흔들었다. 창틀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며 “휘이잉—” 하고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나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흔한 소리였지만, 아이에게는 세상을 무너뜨리는 경고음 같았다.


순간 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작은 손은 곧바로 귀를 막았다. 몸을 움츠리더니 바닥에 웅크려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곧 비명이 되었고, 작은 어깨는 새 한 마리가 덫에 걸려 몸부림치듯 덜덜 떨렸다. 나는 당황해 손에 쥔 칼을 내려놓고 달려갔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하지만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더 세게 몸을 움츠렸고, 내가 손을 뻗자 그 손길마저 밀쳐냈다. 나는 그 순간, 아이의 세계에 나조차 들어갈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속으로 수없이 자책했다. ‘왜 나는 이 아이의 두려움을 막아줄 수 없을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왜 알지 못할까. 엄마면서 왜 이렇게 무력할까.’ 아이의 울음소리는 단순히 커다란 소음이 아니라, 나를 향해 던져진 절규 같았다. 마치 “엄마, 제발 이 소리를 없애줘, 제발 나를 살려줘”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 울음 앞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고, 가슴은 저릿하게 조여 왔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 속으로 함께 들어가 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그 소리를 없애주려 하기보다, 그 소리 속에서 내가 함께 머물러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아이가 바라는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억지로 손을 잡지도 않았고, 울음을 멈추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대신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를 아주 천천히 따라 하기 시작했다. “휘이잉— 쉬이 잉—.” 처음엔 어색하고, 나조차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았다. 내 목소리와 바람 소리가 겹쳐지면서, 마치 두려움이 음악으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처음엔 더 크게 울며 귀를 막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울음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였지만, 작은 손끝이 내 손등에 살짝 닿았다.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엄마가 내 곁에 있구나. 아직 무섭지만, 조금은 괜찮아졌어.” 나는 그 순간, 아이가 나를 바라보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여전히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세상은 아이에게 여전히 낯설고 거칠 것이고, 수많은 소리와 빛이 아이를 흔들겠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는 걸. 중요한 건 그 순간에도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두려움의 한가운데에도 엄마가 곁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바람 소리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바람 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었다.


그 후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창문 곁에 앉아 소리를 들었다. “휘이잉—.” 아이는 여전히 불안해했지만, 내 옆에 기대앉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리기보다는 내 무릎 위에 머리를 묻곤 했다. 나는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앞으로도 어떤 두려움이 몰려오든, 나는 아이 곁에 서서 그 소리를 함께 들어주리라고. 언젠가 아이가 바람을 공포가 아니라 잠시 스쳐 가는 자연의 숨결로 느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내가 두려움을 없애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