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천천히 도는 시계
고래상어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조금은 안정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또 다른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인형이 아이에게 세상을 견딜 방패가 되어주듯, 나는 그 방패가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그림자가 되어주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만으로는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완전히 덮을 수 없었다.
그 불안은 언제나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우리 아이는 이렇게 느릴까?’
나는 아이를 키우며 늘 비교라는 덫에 걸려들곤 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또박또박 단어를 말했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눈을 맞추었다. 어떤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고, 또 다른 아이는 또래와 어울려 뛰어다니며 재잘거렸다. 하지만 내 아이는 여전히 고래상어 인형을 품고 내 곁에만 머물렀고, 새로운 환경에서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바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내 아이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보여 가슴이 먹먹해졌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모일 때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했다. 모임에서 다른 엄마들은 자랑스럽게 아이의 성장을 이야기했다. “우리 애는 벌써 글자를 읽어요.” “우리 애는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어요.” 그 자랑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들이 내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부끄럽게도 웃음을 가장하며 속으로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이를 더 잘 끌어주지 못해서 이런 걸까?’
그렇게 불안과 자책으로 흔들리던 어느 밤이었다. 아이가 잠든 후 문득 창밖을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에는 또렷한 달빛이 떠 있었다. 달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어둠을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태양과 달의 차이를 떠올렸다. 태양은 하루를 빠르게 오르내리며 세상을 지배하지만, 달은 언제나 느릿느릿 움직이며 밤을 환히 밝힌다. 속도는 다르지만, 결국 달빛도 세상에 빛을 남긴다.
그 깨달음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내 아이는 태양이 아니라 달 같은 존재였다. 남들보다 늦고, 더디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 자기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밝혀갈 아이였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태양의 속도로 바라보려 했기에, 늘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때로는 좌절까지 맛보았다. 그러나 아이의 시계는 태양이 아닌 달의 시계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그 후로 나는 아이의 속도를 억지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한 발 내디디면, 나는 앞서 두 발을 재촉하지 않고 그 옆에서 한 발만 함께 내디뎠다. 아이가 멈추면 나도 멈추었고, 아이가 고개를 들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때로는 길고 지루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아이의 작은 성취를 더 크게 바라보게 되었다. 남들에겐 당연한 한 걸음이, 내겐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한 기적이었다.
어느 날의 장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이가 고래상어 인형을 품에 안은 채, 망설이다가 아주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던 순간이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이미 앞서 달려가 놀이터를 가득 채웠지만,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똑같이 느린 속도로 발걸음을 맞추었다. 그날의 걸음은 느렸지만, 내게는 그 어떤 경주보다 값진 여정이었다. 그 걸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속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발걸음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나는 아이를 보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네 시계는 달님 시계니까. 천천히 가도 멈춰 서 있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네 빛을 잃지 않는 거야.”
아이의 시계가 천천히 돌더라도, 그 속도는 아이의 삶이며, 나의 사랑은 그 옆에서 언제나 같은 리듬으로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