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울림을 만든다

울리려 쓴 글이 아닌데 사람들이 울었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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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을 먹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보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라고 여겼다. 며칠 안 갔더니 오라는 전화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형희 씨였다.

“언니 나 언니 책 오늘에야 다 읽었어.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

목소리가 핸드폰 밖으로 다 새어 나왔다.

“언니가 책 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어. 내가 아는 작가 중에 언니가 최고야.”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안이 벙벙했다.

형희 씨는 딸이 고등학생일 때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 같은 공직에 근무하는 직장맘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이 통했다. 배우고 익히는 방향도 비슷했다. 우리는 심리교류 분석 상담 자격증을 같이 땄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함께 준비했다.

나는 그녀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사람들에게 치이면서도 여장군처럼 일을 풀어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나는 엄두가 나질 않을 일을 그녀는 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군분투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은 몸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잘 마무리됐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도 그녀에게 자주 말했다. “너니까 그걸 참고 한 거야.”

오늘은 형희 씨의 극찬 앞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야, 너는 나보다 사연 더 많잖아. 네 인생 이야기 쓰면 책 열 권은 나오겠다.” 형희 씨는 “그렇긴 하지,” 라고 말하며 우린 서로 웃었다. 설 지나고 만나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 나누자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형희 씨는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나왔을지 궁금했다. 형희 씨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다음 날 퇴근길 친정에 들렀다. 엄마는 요즘 피부에 관심이 많다. 엄마는 늦깎이 학생이다. 학교에서 자신이 제일 나이가 많다고 했다. 나이가 많아 보이면 동생들이 끼워주지 않을 것 같다며 반 친구들이 추천한 기미 크림을 샀다고 했다. 반 친구들이 밤에는 그 크림을 바르고 아침에는 선크림을 꼭 바르고 오라고 했단다.

엄마는 나에게 선크림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상으로 나는 화장대 서랍에 많을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평생 선크림이라는 걸 발라본 적이 없다고 했다. ‘와 우리 엄마도 거짓말을 할 줄 아네.’라며 황당했지만, 퇴근길에 사서 가겠다고 했다.

엄마의 화장대에는 오래돼서 굳어버린 선크림이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는 유효기간이 지난 선크림을 화장대 정리할 때마다 버렸다. 글씨가 작아서 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에 유성 매직으로 ‘선크림’이라고 써놓은 적도 있다. 사람은 필요해질 때야 비로소 보인다.

나는 다이소에서 선크림과 중소형 건전지 2개도 같이 샀다. 엄마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응, 민용이. 이틀 전화 없으니 기다려지더라.” 남동생이었다. 나와는 달리 남동생은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하나 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동생이 해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는 동생에게 내가 선크림을 사 왔다고 말하자 동생이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나 보다.

엄마의 핸드폰을 받아 들자 동생은 “누나, 나 누나 책 읽고 울었어. 글 잘 썼더라.”라고 말했다.

책을 쓰고 많이 들었던 말은 ‘울었다. 고생했다. 대단하다’였다. 형희 씨, 남동생 말고도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마음이 찡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말이 ‘고생 많이 했네.’였다. 울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감동을 주었나 보다고 생각했다가 ‘고생했네’라는 말을 들으면 내 의도와 책이 잘못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고생했다는 말을 들을 때는 “누구나 이 정도 고생은 다 하고 살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얼마 전 나도 ‘폭삭속앗수다’라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던 적이 있다. 동명이와 해식의 삶이 내 마음에 와닿으며 내가 그들이 되어 그들과 함께 슬퍼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살지만, 비슷한 마음을 안고 산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한다. 속마음은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누군가 “나도 그런 마음이었어”라고 말해 주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이 나는 것 아닐까.

가족 이야기에 눈물이 많은 이유도 가족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가족 속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누구나 들어내지 못하는 마음 하나쯤은 품고 산다. 꺼내지 않고 살아도 된다. 다만 가끔은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보면서 울면 된다. 그 정도의 여백은 있어도 괜찮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나는 내 주변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 마음을 조용히 꺼내 놓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 여백을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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