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통지서가 온 날 – 걱정과 놓아줌 사이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 우리 아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퇴근해 집에 오니 식탁 위에 등기우편 안내 스티커가 두 장이나 놓여 있었다. 발송지는 병무청, 받는 이는 아들. 며칠 전 아들이 카톡으로 “입영 통지서가 발송될 예정”이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봉투 속 내용은 짐작이 갔다.
스티커에는 2차 방문 일자가 적혀 있었다. 그때도 못 받으면 직접 우체국에 가야 했다. 2차 방문일 아침, 나는 출근길에 스티커를 아들 방문에 붙여두고, 10시에 알람을 맞춘 후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결재 서류를 보던 중 알람이 울렸다. 전화를 걸자 자다 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형진아, 아저씨가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온다니까 꼭 받아.”
그렇게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받겠지 했다.
오후에 “등기 받았어?”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남편이 가족 단톡방에 대신 답을 남겼다.
“못 받았대.” 난 한 숨을 쉬며 아들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들은 현관 초인종 소리에 나갔다고 했다. 문 앞에는 또다시 스티커만 붙어 있었고 우체부 아저씨는 이미 사라진 뒤라고 했다.
“그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어야지. 아니다. 아저씨한테 전화를 했어야지.”
등기우편을 못 받은 아들을 야단치려다가 “내일 우체국으로 와라. 엄마 회사 근처니까 와서 점심 같이 먹으면 되겠네.” 내가 대신 찾아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 해 봐야 배우고 불편을 겪어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들에게 점심시간에 맞춰 오라고 했다. 근처 파스타집에 예약도 했다. 전철을 타고 있어야 할 시간에 전화를 걸어 “어디야?” 하고 물으니 집이란다.
“아직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해. 빨리 나와.”
전화를 끊고 파스타집 예약 시간을 12시에서 12시 30분으로 미뤘다.
우체국까지는 안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길을 헤맬 것 같았다. 나도 예전에 등기우편을 찾으러 갔다가 한참을 돌아다닌 기억이 있었다. 구청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신설동 우체국으로 향했다.
근처 정류장에 내리니 아들한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우체국은 싶게 찾았냐고 물었다. 아들은 자신을 뭘로 보냐며 여기도 못 찾아 올 것 같냐며 황당해 한다.
“신분증 잘 내고, 봉투 받아와.”
아들은 신분증을 내밀었고, 직원이 등기우편물 두 통을 건넸다.
“엄마 안 왔으면 헤맸겠지?”라고 말했다. 아들은 배시시 웃었다.
버스를 타고 직장 근처로 돌아와 파스타집에 도착하니 늦춘 예약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왔다. 식당사장님이 안내하는 안쪽 창가에 앉아 등기우편봉투를 열었다. 하나는 신체검사 안내문, 다른 하나는 입영 통지서였다.
‘9월 23일 화천 7사단 훈련교육대 입영.’
날짜와 장소,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자르고 간소복 착용, 여비는 군에서 지급. 등 봉투를 열자마자 쏟아지는 빼곡한 글씨는 무게워지는데 눈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입영 통지서가 눈앞에 있었다.
아들은 “엄마, 나 군대가 어떻게 해.” 하고 웃었지만 웃음 속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안 해본 일이니까 걱정되고 불안하지. 엄마도 뭐든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하다 보면 질서가 잡히고 그럼 또 지낼 만할꺼야. 다만 엄만 네 내성발톱이 군화 신으면서 도질까 봐 그게 걱정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아침 알람에도 잘 못듣고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본 아들이 군대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데리고 있는 동안 이것저것 시켜보고 구박도 하며 단련시켰어야 했나. 고이고이 키운 것이 오히려 그의 삶에 방해가 된 건 아닌지.
그러다가도 ‘군대 가서 너무 고생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나 군대 가면 울 거야?”
“글쎄, 잘 모르겠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내 마음은 이미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입영 통지서를 보기 전까지는 아들에게 군대 지원했냐고 여러 번 물었다. 괜히 서류를 잘못 냈다거나 절차를 빠뜨려 영장이 안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뭐든지 하는 일마다 허술해 보여 늘 마음이 쓰이는 어리숙한 막내아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장을 받아 들고 나니 내가 아들에 대해 너무 안절부절 걱정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이기며 살아가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의 곁에서 그 불안을 더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