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마음, 나를 위한 한 조각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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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한 마음, 나를 위한 한 조각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자, 집 안 공기가 고요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열린 방문 안으로 아들이 침대에 길게 뻗어 있었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학교에 가서 휴학계를 내고 왔다며,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피곤하다”는 말을 흘렸다. 왠지 모르게 후련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듯한 목소리였다.

점심은 먹었냐고 물으니 아들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찡했다. 학교에 혼자 가서 서류를 내고 오는 길에 제대로 된 식당 밥 한 끼도 챙겨 먹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을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제 곧 군대에 갈 아들이지만 아직은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는 5만 원권 지폐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스텐드 불빛이 노란 지폐 위로 번들거리며 반짝였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났어?” 하고 묻자 아들은 몸을 비틀며 돌아누우며 대답했다. 설 세뱃돈이랑 생일에 받은 용돈, 그리고 친할머니 이사하면서 도왔더니 고모들이 준 용돈이란다.

나는 통장에 넣어야 이자도 붙고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며 말을 건넸다. 아들은 침대 옆에 두었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통장에 넣으면 학교에서 밥만 사 먹어도 돈이 훅훅 빠져나가. 얼마 쓰지 않은 거 같은데 금세 잔액이 없어. 그래서 일부러 현금으로 두는 거야”라고 했다. 듣고 보니 이 방법도 아들이 돈을 아껴쓰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밖에서 쓰는 카드의 잔고는 줄어드니 돈을 덜 쓰게 된다. 집에 있는 현금 뭉치는 가지고 나가지 않는 한 그대로 있지 않는가.


책상 위에 있는 5만 원권이 몇 장이나 될까 궁금했다. 세어보니 서른 장, 무려 150만 원이었다. “150만 원이나 돼!” 하고 내가 놀라 말하자 아들은 군대 가기 전에 다 쓰고 갈 거라고 했다. 특히 9월에 휴가 나오는 친구 있다며 같이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서 먹고 싶은 걸 다 시킬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1인당 30만 원도 넘을 텐데”라며 내가 눈을 크게 뜨자, 아들은 웃으며 “엄마, 그렇게 말해도 애들이 그렇게 시키진 않아”라고 했다. 군대 가기 전 친구들에게 한턱 내고 싶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 왜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한턱’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 순간 가슴 한쪽에 살짝 서운함이 올라왔다. 아들이 친구를 챙기는 마음만큼, 나도 챙겨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곧 자기 건 아끼면서도 남에게는 기꺼이 쓰는 그 습관이 어쩌면 나를 닮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늘 아들에게 “뭐 먹을래?”를 먼저 물었고, 내가 먹고 싶은 건 뒤로 미루고 남들이 원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냉장고에 있는 먹다남은 감자탕을 가스렌지 위에 올려 데우기도 귀찮았다. 얼마전 딸이 먹다 남긴 고무마 피자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쌀통에서 쌀을 꺼내다 말고 아들 방으로 갔다. ‘오늘은 피자 먹자’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아들은 배시시 웃으며 자신이 주문하겠다고 했다. 나는 나의 핸드폰을 내밀며 내가 살꺼니가 내 핸드폰 배달앱에서 주문하라고 핸드폰을 아들에게 내밀었다. 아들은 배달앱을 보며 포테이토 피자를 먹자고 했지만, 나는 고구마 피자에 크러스트 추가, 거기에 고구마 토핑까지 추가해서 먹겠다고 했다. 내가 시키는 거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들에게도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시키라고 했다. 아들은 내가 원하는 피자에 스파게티를 하나 더 추가해서 주문했다.


30분정도 지나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현관 앞에 놓인 피자는 따뜻했다. 피자 상자를 여는 순간,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거실 가득 번졌다.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끝을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고구마 무스와 쫄깃한 치즈가 혀 위에서 달달하게 어우러졌다. 그 순간 ‘내가 먹고 싶은 걸 내가 골라서 먹는다’는 단순한 기쁨이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나는 아들에게 “엄마는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걸 내 돈 주고 시켜 먹어서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피자를 네 조각이나 먹었다. 집에서 내가 고른 메뉴를 아들과 마주 앉아 먹는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아들에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남을 위해 기꺼이 쓰는 너의 마음, 그건 참 소중하다. 하지만 그 마음 한켠에는 네 자신을 위한 자리도 꼭 남겨두렴. 그게 네 삶을 더 따뜻하게 지켜줄 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제는 나를 위해 기꺼이 따뜻한 피자 한 조각을 주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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