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만원짜리 실패 수업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늘 어려운 문제다. 잘못했으니 조용히 숨듯 지내야 할까. 아니면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서야 할까.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점심 무렵이었다. 직원들이 교대로 점심을 먹느라 사무실이 조금 어수선했다. 그때 70대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과 그의 딸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창구 앞에 섰다. 여자는 손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내미는 서류는 구겨져 있었다.
“이거 발급이 가능합니까?”
여자가 내민 서류는 한정상속과 관련된 법원서류였고 그 안에는 발급해서 가져가야할 증명서 목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미 며칠째 동사무소와 구청을 오가며 상당수의 서류를 발급 받은 듯 했다. 발급받은 목록에는 체크 표시가 되어 있었다.
“동사무소에서는 안 된다 하고, 구청에 가면 알아서 해줄 거라며 여기와서 발급받으라고 해서요.”
그녀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그녀는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내민 서류에서 “최이님”이 어느 분이냐고 물었고 같이 온 어른신임을 확인했다. 그의 신분증을 받아서 발급할 수 있는 서류목록을 살폈다. 납세증명서, 세목별 과세증명서, 체납내역서 발급이 가능했다. 문제는 납세증명서였다. 체납이 있으면 발급이 되지 않는다. “최이님”납세자는 자동차세와 주민세 체납이 있었다. 납세증명서 발급이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의 설명에도그녀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럼 일단 체납내역서를 출력하고 납부를 한 다음에 납세증명서를 받으면 세 가지 발급이 가능하겠네요.”라고 설명했다.나는 ‘최이님“의 체납금을 납부할 수 있는 전용계좌를 인쇄해서 주며 납부하라고 안내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 내라고 하네. 빨리 보내.” 마치 이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듯했다.
세목별 과세증명서를 발급하려면 년도를 지정해야 했다. 언제부터의 내역이 필요하냐고 묻자 그녀는 서류 하나 발급하는데 왜 이리 어렵냐며 서류보고 알아서 해달라고 한다. 질문할수록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묻지 않고 발급할 수도 없는 일이라 나 역시 난감했다. 점심 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예진 주임에게 자리를 넘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여직원들과 ‘APT’ 라인댄스 동작 연습을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민원인이 아직도 창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까 그 직원 나오라고 해! 일을 이따위로 하니까 욕을 먹지!”
나는 깜짝 놀라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예진 주임은 얼굴이 불그락거렸고, 민원인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쏟아냈다.
“내가 오빠 관련 서류를 떼러 왔다고 했지 엄마 서류 떼러왔다고 했냐며 왜 말을 잘못 알아듣고 일처리를 잘못해요? 난 납부 못하니까 여기서 처리하고 납세증명서 발급해줘요.” 그녀의 불만은 이미 감정 폭발 직전이었다. 예진 주임이 설명을 하려고 하자 웃는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며 예진 주임에게 화를 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실수로 직원이 곤경에 빠졌다. 이 민원인을 빨리 보내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예진 주임이 설득하려 할수록 그녀는 더 소리를 높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그 민원인을 보내고 싶었다.
그녀의 오빠의 체납도 엄마의 체납액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두 건에이었다. 6포인트 정도로 빼곡하게 쓰여진 내역서로는 어느 것이 그의 엄마의 체납내역이고 오빠의 체납내역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납부된 엄마의 체납액을 오빠의 체납액으로 충당할 수 없고 환불도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민원인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상황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제가 대신 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 계좌에서 그녀의 오빠 체납금 가상계좌로 245,970원 이체했다.
허탈했다. ‘왜 내가 이런 돈을 내야 하나.’ 억울한 마음과 함께 직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뒤섞인 순간이였다.
그녀는 여전히 의심을 놓지 않았다. “엄마 주민세가 6천 원인데 오빠주민세는 5,100원이 잖아요 이거는 어떻하실거예요”라고 따졌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당신은 당신의 엄마 세금을 낸거고 나는 당신의 오빠 세금을 낸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도 나의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그럼 제가 900원을 더 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난 경우없는 사람이 아니예요“라고 말하며 주머니에서 구겨진 오천 원권 한 장과 100원짜리 동전을 창구 앞에 놓는다. ”됐어요“라는 나의 말에 화를 내기에 받아가지고 내자리로 왔다.
그들이 가고나자 예진 주임이 “팀장님, 이렇게 돈으로 해결하면 안 돼요.”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민원 창구 직원이 신규교육으로 기존 직원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었는데 인증 수수료 결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증기수입을 그날그날 고지서 발행하여 은행에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담당 직원의 공백으로 이 일이 2주가량 밀려 있었다. 전달 들어온 인증기 수입은 다음날 납부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 일을 하다가 실수했다. 2천 원을 내야 하는데 4천 원을 내버렸다. 예진 주임은 내일 부과를 취소하고 다시 처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두었으면 했다. 적게 낸 게 아니니 내가 2천 원을 내고 직원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 예진 주임은 안된다고 말하면서 전날 결산도 내일 처리 하겠다고 했다. 난 오늘처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실수를 연달아 하고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나섰다가 직원들에게 폐만 끼친 건 아닐까. ‘실수를 돈으로 막아야 하는 게 맞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 나의 실수만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보니 어제 하루는 ‘돈으로 경험을 산 날’이었다. 누구나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음식을 사고, 옷을 산다. 나는 그 돈으로 실패한 경험을 샀다. 값비싼 수업료라면 수업료였다.
나는 일을 해치우는 데는 익숙하지만 꼼꼼히 살피며 차분하게 처리하는 데는 약하다. 그래서 종종 실수를 한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게 맞을까.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실패한 경험을 사야 언젠가 성공한 경험도 살 수 있다. 오늘 내가 잃은 건 돈이었지만 얻은 건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였다.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 실수로 예진 주임에게는 번거로움을 준 것같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