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것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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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것


누군가를 부양하는 삶이 좋을까, 아니면 부양받는 삶이 좋을까.


아들은 9월에 군대에 간다. 그동안은 막연히 멀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날짜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보니 현실이 되었다. 딸은 이미 지난해 캐나다로 떠나 생활하고 있다. 아들이 군대에 가고나면 집에 남편과 나 둘만 남는다. 벌써부터 집안 공기가 달라질 것 같다.

직장에서는 나보다 먼저 그런 시간을 맞이한 언니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집에 들어가면 밥해 달라는 사람도 없고 늦게까지 일하거나 모임에 가도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니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에게도 곧 그런 날이 오겠구나’ 하고 기다려왔다.

입영통지서를 받아든 날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아들은 다한증으로 손과 발에 땀이 많이 난다. 내성 발톱으로 가끔 발가락의 통증을 호소했다. 성격도 내성적이라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입역통지서를 앞에 놓고 아들이 가진 단점만 떠올랐다. 군생활훈련소에서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새로운 환경에 혼자 잘 버틸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다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미리부터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그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 한편에 그 빈자리에서 찾아올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이 동시에 자리 잡았다.


얼마 전 이사 문제로 엄마집에 갔다가 엄마가 가슴이 아파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순간적으로 심장에 쿵하고 내려 앉았다. 엄마가 혼자 계시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 집 근처에 살면서도 자주 찾아가지는 않았다. ‘괜찮으시겠지’ 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는 마음이 달라졌다. 혹시 내가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이 지나도 모른 채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흔들었다. 그날부터 퇴근길에 엄마 집에 들르기로 했다. 이번 주내내 엄마집에 들렀다.

어제는 나주 곰탕을 포장해 갔다. 전날 집에 들어서니 소파 팔걸이에 고춧가루가 붙어 있는 국대접 있고 그 위에 숟가락하나가 걸려져 있었다. 엄마는 벌써 저녁을 먹은 것 같았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 소파에 앉아 반찬도 없이 먹었겠다는 짐작이 들었다. 왠지 마음이 짠했다. 가끔 들를 때는 “엄마, 밥 잘 챙겨 먹어야해요”라는 말만 건네고 돌아왔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 말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젊은 사람도 혼자 살면 끼니를 잘 챙기기 힘든데 나이 들면 더 어렵다. 내가 “잘 챙겨 먹어”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라면 하나 끓여 드시거나 국에 밥을 말아 대충 때우는 게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곰탕을 사갔다. 엄마는 “사다주면 잘먹는데 너를 더운데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구나” 하며 미안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던 내가 매일 찾아가니 엄마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집에 마늘 없으면 작은 방에 늘려 있는 통마늘 가져가라고 했다. 집 냉동고 안에는 깐 마늘이 한 통 있었다. 껍질이 벗겨지지 않바늘을 가져가 깔 생각을 하지 가져가기 싫었다. 나는 집에 많다며 거절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괜히 그랬다 싶다. 엄마도 딸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던 건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부양한다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엄마가 거동이 어려워지면 어떡하나 혹시 치매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를 돌봐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엄마가 귀찮은 존재가 된다. 엄마는 가끔 “나 치매 걸리면 요양병원에 그냥 넣어라”라고 하셨지만 그 말 속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느끼며 더 무거워졌다. 젊어서는 자식 부양하느라 애썼는데 이제는 엄마를 부양해야 한다니 내 인생은 언제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요 며칠 매일 엄마 집에 들르며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귀찮고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엄마를 돌보고 있구나’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집에 가서 엄마와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청소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엄마가 뭐 하고 계신지 보고, 밥은 드셨는지 확인하고 돌아오는 게 전부다. 팬티와 러닝셔츠 차림으로 있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얼른 파자마로 갈아입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내가 괜히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현관을 나설 때 “왔다 갔다 힘들겠다”라고 하는 엄마의 한마디에 ‘엄마는 내가 오길 바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다녀오면 마음이 편하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에도 그리 배고프지 않다. 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건 단순히 돌봄의 수고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증거다. 꼭 돈이 많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를 돕거나 부양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여전히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매일 엄마 집에 들르는 일이 습관이 되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아마 많이 허전하고 슬플 것이다. 저녁 6시가 되면 습관처럼 엄마 집으로 발길을 옮기던 내가 그 시간에 할 일이 없어져 공허함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엄마는 결코 나에게 피해만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나의 일상을 채우고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아들의 군 입대와 엄마의 노쇠, 그리고 나의 삶.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를 부양하는 삶과 부양받는 삶 중 어느 쪽이 더 좋은가. 예전에는 부양은 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건 내 삶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엄마를 위해 매일 발걸음을 옮기는 지금, 나는 오히려 힘을 얻는다. 부양은 짐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런 생각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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