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인정한다는 것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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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을 인정한다는 것”


안녕하세요. 저는 매일 아침, 블로그에 제 마음을 적어내려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모닝 저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저는 그냥 마음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점심, 동료 복희 계장과 함께 구청 근처를 산책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주말에 드라마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니까요. 광해군 이야기를 각색한 건데, 대화들이 너무 웃겨서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그녀의 표정은 환했습니다. 마치 드라마 속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듯 즐거워 보였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툭 내뱉었습니다.

“아, 난 드라마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시간 낭비 같아.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은 그래도 뭐 배우는 게 있으니까 보는데, 그런 코믹이나 로맨스 드라마는 재미도 없고.”

내 말에 복순 주임은 잠시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런 드라마 덕분에 주말이 기다려져요. 마음이 답답할 때 웃으면서 보니까 진짜 좋아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부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드라마를 시간 낭비라고 여겼지만 그녀는 그 드라마 덕분에 삶이 조금 가벼워진다고 했습니다. ‘아, 저런 삶도 의미 있구나.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도 복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길에 카톡이 왔습니다. 남편도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온다고 하고 아들도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득 집에서 혼자 밥을 먹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엄마 집으로 갔지요. 엄만 내가 여기서 저녁을 먹고 간다는 말에 갑자기 냉동실 문을 열더니 덩어리 돼지고기를 꺼내는 겁니다. 나는 황급히 말렸습니다.

“아유, 엄마. 지금 그거 녹이면 언제 먹어. 그냥 있는 반찬 먹자.”

엄마는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덩어리 고기가 아니였습니다. 돼지고기를 썰어 비닐을 깔고 켜켜이 얹어서 얼려 놓았던 겁니다. 엄마가 힘을 주어 벌리니 떨어지더군요. “봐라 그냥 떨어지지. 너 안왔으면 나도 안 먹는다. 네가 왔으니 먹어야지.” 그 말에 괜히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엄마, 나 고기 안좋아해. 있는 반찬으로 먹자니까.”

나는 몇 번이고 말렸지만 엄마는 끝내 고기를 프라이팬에 올렸습니다. 기름이 지글지글 튀고,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왔습니다. 엄마는 감자와 양파를 넣고 소금 간을 해 볶아주었습니다. 평범한 돼지고기 볶음이었지만 그날따라 참 맛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많이 먹어라. 네가 다 먹어라.”

나는 “엄마, 다 못 먹어” 하면서도 결국 다 먹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정성이라는 게 결국은 다 삼켜지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괜히 ‘안 먹어도 된다고 말했구나 말리지 말 걸‘. 그냥 “엄마랑 같이 먹으니까 좋네” 하고 한마디 했으면 좋았을 걸. 그 순간 나는 내 감정만 앞세운 게 같아 뒤늦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엄마집에서 밤 아홉 시쯤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책을 읽다 졸다가 열 시 반쯤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깊이 잠든 건 아니였습니다. 문 여는 소리가 났습니다. 남편이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 싫었습니다. 그냥 자는 척했습니다. 조금 뒤 다시 문소리가 났습니다. 아들이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뭐야, 머리 깎았어? 벌써 깎으면 어떡해?”

순간 귀가 쫑긋섰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머리를 깎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당장 일어나 아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들어왔을 때 자는 척한게 들통 날까 봐 꾹 참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속에 남편보다 아들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요.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내 마음. 남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혜리 주임이 사탕이랑 초코바를 비닐팩에 넣어 직원들 책상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솔직히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다면서, 왜 이런 걸 하지?’ 그런데 곧 깨달았습니다. 힘든데도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하는 거라는 걸요. 사람은 힘들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기꺼이 에너지를 씁니다. 그것을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는 거지요.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거였어요. 누구의 삶이 옳다, 그르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삶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내 기준으로 ‘맞다, 틀리다’를 재단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에 잣대를 들이대려 했을까.” 글을 쓰다 보니 나를 보게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비난하지도 말자. 인정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지루하다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에겐 이 삶이 편안합니다. 다만 누군가 제게 “그게 재미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때야 비로소 저는 말할 겁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내마음을 보게되어 마음이 편한해져요”라고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누구는 드라마를 보며 웃고, 누구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또 누구는 가족과의 밥 한 끼에 위로를 얻습니다. 그 모든 삶이 다 옳고, 그 모든 모습이 다 의미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사연을 듣는 누군가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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