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마음, 너를 위한 마음
일이 뜸한 날이었다. 얼마 전 2차 퇴고까지 마치고 나니 괜히 손이 허전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늘 분주한 직원이었다.
그녀는 직장맘이다. 초등생 딸과 아들 둘이 있다. 육아시간 2시간을 쓰며 근무한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남은 시간 안에 일을 해내야 하니 마음도 바쁘고 손도 늘 분주했다. 점심교대, 회식장소 정하기 같은 자잘한 일까지 맡다 보니 늘 바쁘게 움직였다.
“일이 많아요.”
그녀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을 때, 나는 순간 민망했다. 요즘 한가한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주었다. 소송 응소 방침을 세워주고, 체납중지 계획도 대신 정리해주었다.
사실 칭찬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더 괴로웠다.
메일로 응소 방침을 보내며 짧게 덧붙였다.
“힘들어 하는 모습 보니 나도 힘들네, 도와줄 일 있으면 말 해.”
메일을 발송하고 다음날 다시 내가 보낸 메일을 보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았다. 그녀는 “잘 쓰셨네요”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에는 체납중지 계획을 세워 보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계획서야 30분이면 다 세우는데, 체납정지 명단을 넣으려면 전산을 돌려야 해서 미루고 있었어요.”
나는 얼떨결에 이렇게 답했다.
“아 그래, 난 그냥 할 일 없어서 세워봤어.”
말을 내뱉자마자 이번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내가 이번에도 그녀에게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재촉한 건 아닐까. 그녀에게 진짜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불편함만 얹어준 건 아닐까.
주말에는 새언니 집에 가서 가족 식사를 했다. 새언니가 아들 군대 간다고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한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사왔고, 형진이가 좋아한다고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준비했다. 동생네 식구도 불렀고, 엄마도 오셨다.
하지만 엄마는 밥을 먹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새집으로 이사 가기 전, 오빠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새언니와 말다툼이 있었다. 그 뒤로 새언니는 엄마에게 전화도, 방문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서운해했다.
나는 이번 식사가 화해의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서로 웃을 수는 없더라도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준비해준 새언니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형진이 생각하는 건 새언니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엄마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새언니가 엄마에게 “게장 좀 싸드릴까요?”라고 물어도 엄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보다는 새언니와 더 대화를 나눴다. 군대 선배로서 새언니가 해주는 이야기가 내겐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자리를 애써 외면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기분이 망가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완전히 이타적인 행동도 없고, 완전히 이기적인 행동도 없다. 누군가를 도울 때는 늘 ‘상대방을 위한 마음’과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마음’이 동시에 움직인다.
직원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도, 결국은 나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엄마의 냉랭한 태도를 무시한 것도,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결국 나는 늘 ‘내 마음과 상대 마음 사이의 간격’에서 흔들렸다. 도와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는데, 결국 내 편안함만 챙긴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내 마음이 편하려고 한 행동이라도 괜찮다고. 그 마음조차도 부끄럽지 않다고.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사실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도왔지만 마음이 무겁고, 혹은 내 편안함 때문에 한 건 아닐까 자책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마음조차 괜찮다고. 누구나 그런 마음을 품는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조금씩 배우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여전히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한다. 직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일까. 내 불편함을 덜려는 마음과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마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엄마와 새언니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화해했으면 좋겠지만, 그들 사이에 내가 깊이 끼어드는 건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분리된 마음은 없다. 그 섞인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배워가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를 위한 마음일까, 너를 위한 마음일까.”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둘 다 맞다. 그리고 그게 인간이다.”
도움의 마음은 언제나 두겹으로 온다. 그걸 인정할 때 더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