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장해야 이들도 성장한다.
모임에서 배운 부모의 자리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아들었다.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독서 길라잡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부모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었기에 눈길이 갔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지원하려면 자기소개서를 내야 했다. 나는 김미경 강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소개서에 모임 운영자의 자질을 더 갖추고 싶다고 썼다.
며칠 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다. 경쟁률도 3대 1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담당자가 처음에는 나같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뽑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강의를 끝까지 따라오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줌 강의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묘하게 뿌듯했다. 성실함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적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함께 8주 기본 과정, 8주 심화 과정을 마쳤다. 과정이 끝나갈 무렵, 담당자는 앞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계속 모임을 이어가라고 권했다. 나는 그림책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고, 다른 선생님은 독서 릴레이 모임을 꾸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개의 모임이 생겼고, 나는 독서 릴레이에 참여하고 그림책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그림책 모임은 2주에 한 번씩 줌으로 만났다. 함께 책을 읽고, 각자 느낀 점을 나누었다. 42권의 그림책을 읽고 지난 8월 모임을 잠시 멈추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여럿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 인원이 줄었다. 둘이서만 모이는 날도 있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도, 그렇지 않은 상황도 불안했다. 나름 준비했지만 준비만으로 부담이 덜어지지 않았다. 미숙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까지 잠시 쉬기로 했다. 그래도 2년 동안 꾸준히 그림책을 읽어온 시간은 소중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는 걸 알았다. 글보다 그림이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와 눈이 피로할 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언젠가 눈이 나빠지면 그림책만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독서릴레이를 같이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만나는 날이다. 독서 릴레이는 이향선생님이 리더로 운영한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정하면 같이 읽는다. 하루하루 읽는 분량을 정해서 읽고 단상을 단톡방에 남긴다. 난 점점 게으름이 생긴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단상을 읽으며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알게되고 그들의 생각에 내 생각과 말을 보태고 싶을 때가 많다.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이기에 소중하다.
지영샘, 은혜샘, 혜미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모였다. 나는 이 모임은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즐겁다. 사실 그들이 좋아서 가는 모임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기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그런 마음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오전 10시, 사무실에 외출를 내고 나섰다. 밖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교보문고에 도착했을 때는 신발이 이미 다 젖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이미 다른 장소로 옮겨갔다고 했다. 나는 다시 우산을 들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식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를 어떻게 키웠냐”는 질문이 내게 돌아왔다. 나는 아들 영어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남이 좋다고 하는 영어학원에 보냈다. 그때부터 개인 지도, 화상 수업, 해외 어학연수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결국 ‘남의 말만 듣고 내 생각은 없었던 탓’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이 말했다. “어렸을 때 영어는 혼자 하면 안 돼요. 부모가 같이 해야 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는 학원 선생님에게만 맡겼던 것 같다. 직장 일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는 더 이상 아이 공부를 챙길 마음이 없었다. 그냥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아들과 같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들은 이미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가르칠 수도 없고, 아들도 나에게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을 했다. 독서 모임을 이끌며 책을 읽었고, 그림책 모임을 운영했다. 지금은 글쓰기 강의에 참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갔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지금 수도권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름 있는 명문대는 아니지만, 집에서 다닐 수 있는 학교다. 이제는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삶을 제대로 살아가면 자식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오게 된다.
저녁에 아들이 친구와 용산에 갔다 왔다며 있었던 일을 전했다. 친구가 키보드를 사려고 가게에 갔을때는 키보드가 한 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땐 사지 않았다가 다시 갔을때는 품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30분 뒤에 물건이 들어온다”는 안내를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지하 게임장에 가서 인형 뽑기를 했다. 운 좋게도 피겨 하나를 뽑았다. 30분 뒤 다시 가게에 가서 키보드를 사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말했다. “차라리 하나 남았다고 했을 때 살 걸.”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피겨 뽑았잖아.”
나는 아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보다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피겨는 친구가 뽑았지만 아들이 가져왔다. 이유를 묻자 친구 아버지가 이걸 책상 위에 두면 갖다 버린다며 준영이가 자기에게 주었다로 했다. 사실 아들 책상도 지저분하다. 나도 아들 책상 위 잡동사니들을 치워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피겨를 들고 폴짝폴짝 걷는 아들의 뒷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돌아보면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늘 곁에 독서와 글쓰기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스렸고,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정리했다. 그래서 아들의 성적이나 대학 이름 같은 외형에 매달리지 않고, 삶의 태도를 더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부모의 삶은 늘 부족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성적표가 아니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가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아들도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 모임에서 나눈 대화와 아들이 들려준 작은 일화가 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비 오는 날 젖은 신발의 기억처럼 그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