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라는 이름의 마음
퇴근길에 늘 하는 고민이 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아들이 9월 23일에 군대에 가면 그 고민도 사라질 것이다. 요즘 내가 저녁을 챙기는 이유는 아들 때문이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저녁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엄마 집에 갔더니, 엄마는 이불집에 가서 이불을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퇴근길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준비가 마음에 걸렸다. 요 며칠 짜장을 해 두었는데, 아들이 이틀은 먹더니 다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점심에 짜장을 먹었다면 저녁까지 짜장을 주기는 미안했다. 결국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 내일 가자고 말씀드렸다.
집 앞 정류장에서 직장동료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오늘 저녁 뭐해 먹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꽁치 통조림이 있어서 김치 넣고 지져 먹으려고"라고 했다. 그러더니 평생 저녁 밥에서 헤어나지 못할 운명이라며 투덜댔다. 나는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트에 들렀다. 아들이 맛있다고 했던 걸 기억하며 돼지고기 고추장 양념 불고기, 소불고기. 냉동피자를 찾았다. 찾았던 물건중 돼지고기 고추장 양념 불고기만 남아 있었다. 하나를 얼른 집어 들었다. 반찬가게에서도 반찬 세 가지를 샀다. 무나물 무침, 미나리 무침. 더덕 무침을 골랐다. 또 마트에서 계란 한 판을 샀다. 두 손 가득 들고 집에 들어서니 아들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사온 돼지고기에 양파와 버섯을 넣어 볶았다. 반찬은 반찬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지만 대화는 없었다. 아들은 휴대폰을 보며 먹고, 나는 텔레비젼 뉴스를 보며 먹었다. 아들은 식탁 위에 올려둔 반찬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깨달았다. 저녁 걱정을 하면서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아들은 매일 같은 반찬이라고 투덜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사온 반찬은 그가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라 내가 아들에게 먹이고 싶은 반찬이었다. 아들은 점심에 배달해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군대 갈 아들이 집에 있으니 저녁 걱정을 한다. 아들이 군대에 가면 저녁시간은 한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땐 또 아들이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다른 고민을 하겠지. 지금의 걱정은 오히려 가벼운 축에 속한다. 저녁밥 걱정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이 떠나면 분명 시간이 생길 것이다. 그때는 아들 걱정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야겠다. 25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내 생활은 남편과 아이들 중심으로 흘러왔다. 그러지 않으려고 글을 쓰고 공부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다 보니, 어느 순간 가족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후련함보다는 텅 빈 집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컷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은 가족을 챙기는 일 아니였을까.
이제는 남 걱정을 그만해야겠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걱정이다. 내 삶을 어떻게 채울지, 어떻게 살아갈지, 그것을 고민해야겠다. 그것이 이제는 가족을 위하는 일이 라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