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대에서 배우는 건 군사 훈련만이 아니다.
군대 훈련소 아들이 첫 전화
군대는 나라를 지키는 곳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군대는 한 사람이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처음으로 해보는 곳이기도 하다. 단순히 총을 잡고 훈련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나는 군대라는 단어에 오래 전부터 막연한 거리감을 두고 살았다. 여자라서 가지 못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군대를 짐작했다. 군대는 힘들고 고단한 곳, 억지로 견디는 곳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가기 싫다”고 말했을 때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것을 상상만으로 떠올리면 두려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경험이 그렇듯 막상 몸으로 부딪히면 생각과 달라진다. 아들도 그 과정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사무실에서 줌 강의를 듣고 집으로 가던 길. 가방 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얼른 꺼내보니 이미 끊긴 상태였다. 화면에 아들 이름이 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입대하고 나서는 마음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다. 주말에만 전화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토요일 대낮에 아들의 이름이 뜨니 뜻밖이었다. 게다가 아들이 전화를 걸어주면 꼭 잘 받으라고 말했다. 그 순간을 놓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전화벨 끝에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진아, 난 저녁쯤에 전화가 올 줄 알았는데 지금도 가능한 거야?”
“어.”
아들은 짧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닷새동안 참고 있던 숨이 터져나오는 듯 했다.
이번주 화요일에 입대한 아들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목소리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조금 더 낮아지고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밥도 맛있고 이번 주는 교육만 받았어.” 아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한시름 놓였다. 밥이 맛있다는 말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들은 이어서 말했다. “엄마, 지금 옆에서 전화하는데 우는 애도 있어. 나도 엄마랑 헤어질 때 눈물이 났어”
그 말 속에는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스스로를 다잡는 아들의 모습이 비쳤다. 울음은 이미 지나간 감정이라는 듯 목소리에는 묘한 담대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들은 군대에서 겪은 일들을 몇 가지 들려주었다. 보급품을 나눠줄 때 도와줄 사람을 찾자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식당 당번을 하며 숟가락 600개를 씻었다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가 식기세척기가 된 것 같았어.”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루 세 끼, 수백 명이 사용하는 숟가락을 씻는 일. 상상만 해도 고단하지만 그 속에서 농담을 섞어 말하는 아들이 대견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떠올렸다. 집에서도 청소기 돌리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하면 잘하긴 했다. 하지만 늘 누가 시켜야 했다. 자발적으로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군대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아들은 손을 들고 스스로 맡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변화였다.
군대에 가기 전, 아들은 계속해서 가기 싫다고 말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앞둔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상상만으로 떠올리는 장면은 언제나 무겁고 두렵다. 하지만 막상 가서 몸으로 겪으면 다르다. 직접 부딪히고 해보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들의 목소리에는 그런 깨달음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들의 성장이 단순히 군대라는 제도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두려움 대신 신기함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아들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군대 생활이 힘들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아들이 그 시간을 힘들다는 생각보다 새롭다는 생각으로 채운다면 그 경험은 오히려 삶을 지탱해 주는 자산이 될 것이다. 숟가락 600개를 씻는 일도, 보급품을 나르는 일도,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의 작은 순간도 결국은 아들만의 이야기로 쌓여갈 것이다.
부모로서 나는 아들이 그 길을 잘 걸어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게도 같은 다짐을 했다. 새로운 일을 만났을 때 나는 늘 힘들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들은 숟가락 600개를 씻으면서도 “내가 식기세척기가 된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힘들어도 웃음을 찾는 여유. 그것이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군대에서 배우는 것은 단지 군사 훈련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과 함께 사는 법, 주어진 일을 책임지는 법, 때로는 스스로 손을 들고 나서는 용기. 그것이 군대라는 낯선 공간이 주는 값진 배움이다. 나는 아들이 이 경험을 힘든 시련이 아니라, 신기하고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아들에게 배운다. 인생에서 새로움은 늘 불편함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신기함’으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성장이 된다. 아들이 군대에서 그렇게 배우고 있듯 나도 내 삶에서 마주하는 새로움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