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고르듯, 삶을 고른다.

판단력은 나와 맞는 것을 찾아내는 힘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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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고르듯, 삶을 고른다


옷가게에 들어서면 마음이 이상하게 들뜬다. 옷을 입어보는 순간 꼭 사야 할 것 같다. 점원이 ‘잘 어울려요’라고 한마디만 해도 옷을 사야만 가게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분위기에 끌려 샀던 옷이 내게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사이즈가 크거나 색이 어울리지 않아 결국 옷장 한쪽에 걸어만 두고 지나간다. 몇 번이나 반복한 경험이다.


직장 옆에는 홈플러스가 있다. 퇴근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10년 넘게 직장과 마트를 오가며 지냈는데, 올해 11월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다들 아쉬워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없어진다니 그동안 홈플러스가 내 삶의 불편함을 얼마나 덜어주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문을 닫기 전에는 늘 폐업정리를 한다.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마침 직장에서 프리데이라고 하여 두 시간씩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복순 계장이 홈플러스에 가보자고 했다. 1층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물건은 많았지만 딱히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정상가격과 세일가격을 가격을 비교하며 몇 % 세일을 하는 건지 살폈다.

바바리가 눈에 들어 왔다. 집에 걸려 있는 옷은 10년 넘게 입었다. 하지만 헤진 곳은 없다. 그런데 새 옷을 보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옷을 만지는 나를 보고 60대 여성점원이 내 곁으로 왔다. 미소를 지으며 입어보가고 권했다. “입어보세요, 안사도되요”라는 말에 골라주는 사이즈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점원은 “딱 선생님 옷이네요. 사이즈 있을 때 가져가세요. 지금이 제일 싸게 사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얼마냐고 묻자 ‘199,000원인데 고객님에게 너무 잘 어울려서 190,000원 드릴께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옷을 사야 집에 있는 바바리를 버릴 수 있겠다. 손목과 카라에 버버리 특유의 디자인 문양이 들어간 짙은 초록색 바바리였다. 복순계장은 "유명상표도 아닌데 사시려고요"라는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계산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요즘 메고 다니는 가방끈이 찢어졌다. 무거운 물건을 넣고 며칠 더 다니면 끈이 떨어질 것 같다.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은 일 년전에 만원 주고 샀다. 매일 출근 할 때 들고 다는 가방이라 아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싼 가방을 찾아 샀었다. 여기 오니 가방도 세일을 한다. 마음에 드는 배낭을 골라 가격표를 보니 445,000원이다. 다시 붙은 가격표는 89,000원이었다. 같이 온 복순계장인 핸드폰 계산기를 두드리며 “팀장님 80% 세일이네요 그런데 이 브랜드가 원래 이렇게 비싼 상표예요? 라며 다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인터넷에서도 10만원 정도 하네요, 조금 싸기는 하네요“라고 말했다. 난 이 가방도 쌌다. 예전 같았으면 비싸서 사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명절휴가비를 받았다. 주머니가 두둑했다. 나를 위해서 하나 사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와서 산 바바리랑 가방을 펼쳐보았다. 바바리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깨끈은 편했지만 손잡이가 자꾸 흔들려 어깨 위에서 덜컹거렸다. 매일 메고 다닐 걸 생각하니 벌써 불편해졌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작은 선택에도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옷은 단순히 옷이 아니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순간의 기분에 따라 고르면 금세 질리고, 신중하게 고르면 오래 간다. 이것은 삶의 다른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옷을 살 때 나의 판단력을 흐리는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세일이다. 평소 관심 없던 옷도 ‘반값’이라는 문구만 보면 손이 간다.

둘째, 점원의 말이다. 점원은 설득하는 전문가다. “잘 어울리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인지, 판매를 위한 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세째, 순간적인 기분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대담해지고, 기분이 나쁠 때는 충동적이 된다. 옷가게는 그런 심리를 자극한다. 음악, 조명, 향기까지 나를 들뜨게 만든다. 그 안에서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요소들은 나의 눈을 가린다. 결국 진짜 나에게 맞는 옷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옷을 제대로 고를 수 있을까. 나는 몇 가지 방법을 적어두고 실천하려고 한다.

첫째,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 마음이 끌려도 바로 사지 않는다. 옷가게에서 벗어나 주변을 한 바퀴 돈다. 다시 떠오른다면 정말 원하는 옷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잊혀진다면 순간의 충동이었을 뿐이다.

둘째, 꼭 필요한지 질문하기. 이미 비슷한 옷이 있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옷은 결국 돌려 입는 것이다. ‘없어서 불편한지’, ‘있으면 자주 입을지’를 묻는 것만으로도 판단이 분명해진다.

세째, 나만의 기준 만들기. 사이즈, 색, 가격, 소재 같은 기준을 미리 정해둔다. 예를 들어, “비싼옷은 자주 빨지 않아야 오래 입을 수 있으니 어두운 색으로 구입하자”, ‘자켓은 바지와 치마에 잘 어울릴 기장으로 사자’, ‘ 이제는 단색이나 스프라이트 무늬로 사자’ 이런 기준이 있으면 순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네째, 실패에서 배우기. 이미 큰 옷을 사서 후회한 적이 있다면 그 경험을 잊지 않는다. 그 옷을 입지 못한 불편함을 떠올리면 다음에는 더 신중해진다. 실패는 손실이지만 동시에 교훈이다.

판단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점점 길러진다. 옷을 고르는 일도 그 훈련의 장이 된다.


진로를 정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직장에서 결정을 내릴 때도 비슷하다. 순간의 감정이나 남의 말에 휘둘리면 후회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나에게 맞는 기준에 따라 고르면 오래 간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순간의 호감으로 가까워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와 맞는 사람은 결국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준다. 억지로 맞추면 금세 지친다.

직장에서의 선택 역시 같다.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면 후회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편해 보이지만 결국 내 몫의 불편함이 쌓인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옷 한 벌에도 이렇게 많은 생각이 숨어 있다. 작은 선택에서 훈련해야 큰 선택에서도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옷을 제대로 고르는 습관이 쌓이면 삶에서도 나를 지키는 판단력이 자라난다.


옷을 고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아는 일이다. 내 체형을 알고, 내 성격을 알고, 내 생활을 아는 것이다. 판단력은 여기서 출발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때 흔들리지 않는다.

판단력이란 결국 나와 맞는 것을 찾아내는 힘이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후회도 해보고, 실수도 해봐야 배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옷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옷은 정말 나에게 맞는가?”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지켜준다.

옷 한 벌에도 진심을 다해 고를 때, 삶의 큰 선택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긴다. 옷을 고르는 일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삶을 고르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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