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약보다는 체력으로 의지보다는 회복으로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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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구청 밖으로 나갔다. 밥을 먹고 걷는 게 혈당을 올리지 않는 방법이라 하여 요즘은 꼭 그렇게 한다.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맞는 시간이 좋다. 그날은 우연히 보상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주말에 엄마 집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심하게 앓고 계시다고 했다. 전날 보건소에서 코로나와 독감 예방주사를 함께 맞고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밥 한 숟가락도 못 드실 정도로 기운이 없다고 했다. 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니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예방을 위해 맞은 주사인데, 왜 더 아프게 된 걸까.


그 말을 들으며 문득 남편과 나의 차이를 떠올렸다. 남편은 예방주사와 약을 좋아한다.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하고, 예방주사는 반드시 맞아야 한다는 주의다. 나는 그와 달리 약을 잘 먹지 않는다.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 몸이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린다. 약에 의지하면 내 몸이 약해지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면 늘 걱정스러운 듯 말한다. “아프면 약 먹어야 낫지, 그냥 버티면 더 오래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버티는 동안 몸이 스스로 병을 이기는 힘을 배우는 게 아닐까.


며칠 전, 아들이 전화로 감기 기운이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강원도 화천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으로 복무 중이다.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했다. 내무반은 좁아서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금세 모두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병원에 갈 사람이 나오라고 하면 스무 명씩 줄을 선다고 한다. 너무 많은 병사가 몰리자 조교가 “이제 그만 나오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아들은 동기들이 가져온 약을 나눠 먹는다고 했다. 감기 증상은 모두 다를 텐데, 병원에서 받는 약은 모두 같은 약이라고 한다. 나는 “약보다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라.”라고 말했다. 아들은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정수기가 고장 난 건지, 화상 위험 때문에 막아 놓은 건지 아들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날 밤, 남편은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왔다. 종합감기약, 코감기약, 목감기약을 각각 네 상자씩이나 샀다. 한 해를 거뜬히 버틸 양이었다. 남편은 식탁 위에 놓인 약들을 보며 “부족하지 않을까? 두통약도 더 사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약을 보내기로 했다.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속으로 바랐다. 아들이 약보다 체력으로 이겨내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단련하길. 세상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의지하다 보면 나는 점점 약해진다. 내 손으로 해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보상 언니의 어머니가 예방주사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이야기와, 군대에서 아들이 감기약으로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약이든 주사든 우리 몸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몸은 스스로 싸워야 한다. 병을 견디는 동안 면역이 생기고, 마음도 강해진다. 건강이란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플 때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그 힘은 약에서 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 자라난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예방주사 대신 햇빛을 쬐고, 약 대신 내 몸의 회복력을 믿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길 바라지 말고,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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