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 믿음과 실수 사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by 청아이


제목을 입력해주세요. (41).png

“지금 자동차 이전해야 하는데요, 압류가 걸려 있대요. 빨리 좀 풀어주세요.”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후 5시 반, 퇴근을 서두르던 찰나였다.

“체납이 있습니다. 세금을 납부하시면 바로 해제됩니다.”

“고지서도 안 보냈는데 압류부터 하다니요. 그런 법이 어딨어요?”

그녀의 말투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급하니까 오늘은 압류부터 풀어줘요. 내일 가서 낼게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먼저 납부하셔야 합니다.”

“공무원이 그렇게 융통성도 없어요? 유두리라는 게 있어야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럼 가상계좌를 알려드릴게요. 오늘 중으로 납부하시면 됩니다.”

“저 그런거 못해요. 부동산 있어요 그거 압류하면 되잖아요”

따지는 듯한 말투 듣기 싫었다. 체납액은 24,680원 주민세 4년치 였다. 납부하지 않으면 부동산을 압류하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압류해제를 해주었다. 그리고 체납 고지서를 그녀의 주소로 보냈다.

며칠 뒤, 납부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미납’.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고지서 받으셨죠?”

“뭔가 온 것 같긴 한데, 왜 전화를 하세요? 나 괴롭히려는 거예요?”

그녀의 말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니요, 납부 확인차 전화드린 겁니다.”

그녀는 짧게 “알겠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9월 말 납기일까지 납부는 없었다.

나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부동산을 압류해야 하나….”

압류를 해제한 건 그녀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민원인을 믿는 게 잘못일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결재를 받아 부동산 압류 예고문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문 앞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예고문과 고지서를 문틈에 꽂았다.

10월 20일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부동산을 압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전화가 울렸다. 동료 석주임이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제가 갔습니다. 선생님은 약속을 어기셨어요. 납부를 안 하셔서 직접 안내드린 겁니다.”

“그래요? 다 당신 면피용이잖아요. 나를 귀찮게 하는 거잖아요.”

그녀의 말은 짧고 날카로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요, 저는 압류하기 싫어서—”

뚝. 통화가 끊겼다.

남은 건 공허함과 분노였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골탕 먹이려는 거야.’

‘그러게, 왜 압류 해제를 해줬어. 잘못은 그녀가 했는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 부동산 압류해!’

마음 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난 그녀 집에 괴롭히려 한 게 아니다. 납부하지 않으면 귀찮아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공무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납부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결심했다.

‘압류를 할까. 아니면 그냥 내가 내고 잊을까.’

책상에 앉아도 마음이 흔들렸다.

이토록 사소한 일을 두고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직장생활 30년 동안, 내 실수로 민원인에게 돈을 물어준 적도 있었다.

그땐 실수를 바로 인정했다.

이번엔 달랐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잘못을 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마음을 정했다.

“10월 20일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내가 내고 잊자.”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런 민원인 처음 봐.”

그 말 뒤에는 이렇게 덧붙일지도 모른다.

“체납금을 납부도 안 받았는데 압류 풀어주는 공무원도 처음 봐.”압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실수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때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도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을 쓰며 하루를 여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