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으로 알게 된 마음

멀리 있어도 닮아가는 모녀의 하루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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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으로 알게 된 마음 (멀리 있지만 닮아가는 모녀의 하루)

어제는 오랜만에 딸과 통화를 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했니?” 내가 묻자, 딸은 말했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없어서 아빠랑 통화했어.”

딸이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삶이 안정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삶은 참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 같다.

딸은 요즘 저녁을 밖에서 먹다 보니 식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퇴근 후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집에 오면 밤 8시가 넘어 집에서 뭘 해 먹기가 싫다고 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아?” 내가 물었다. “그렇진 않은데, 이렇게 버는 대로 쓰면 저축은 언제 하겠어.” 딸이 말했다.

나는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야. 혼자 살려면 생활비가 많이 들지. 엄마가 용돈 보내줄 테니까, 저녁 사 먹을 수 있으면 사 먹어.”

그랬더니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언제까지 엄마가 주는 용돈을 받고 살 수는 없잖아. 그리고 미래도 생각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이 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마음 한켠이 안타까웠다. 나도 젊었을 때는 돈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내가 벌어 놓은 돈이 나의 미래와 안정을 책임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저축도 하고 아껴 쓰며 살았다.

지금 딸이 하는 생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딸이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다. 그곳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딸은 영어 공부를 통해 영주권을 따려 한다. 그 도전에 저녁밥을 사 먹는 돈쯤은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이렇게 말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딸은 또 말했다. “집 앞에 마트가 있어서 좋을 줄 알았는데, 매일 들르다 보니 과자도 사고 빵도 사고, 먹고 싶은 걸 사다 보니 살이 찌는 것 같아.”

나는 말했다. “먹고 싶으면 먹어. 다만 양을 조금 줄여.”

나도 요즘 갱년기여서 그런지, 저녁을 먹고 나서도 뭔가 계속 먹고 싶다. 그래서 껌을 씹는다. 사다 놓지 않는 게 안 먹는 비결이지만, 그래도 먹고 싶을 땐 조금 먹는다. ‘먹지 말아야지’ 하며 스트레스 받느니, ‘잘 먹었다’ 하고 내일 다시 기운 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딸이 하는 고민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나이에 그곳에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다.

딸은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외모에 신경을 덜 써. 그래도 다음 달에 브라질에 가는데, 사진을 잘 찍히려면 살을 빼야 할 것 같아.”

나는 말했다. “사진 찍으러 가는 게 아니라 즐기러 가는 거잖아. 남에게 보여주려는 여행이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한 여행으로 다녀와.”

사실 나도 딸이 해외에 살면서 몸이 불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게 살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에 만족하면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다.

딸은 혼자 캐나다에서 돈을 벌며 살아간다. 그것만으로도 대견하다. 혼자 집을 구하고, 직장을 다니고, 요가를 배우고, 도시락을 싼다. 모은 돈으로 브라질 여행도 간다. 그럼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저녁 한 끼 사 먹는 데 드는 돈, 써도 된다.

통화를 마치고 나도 AI 전자책 강의를 들을까 말까 망설였다. 수강료가 35만 원이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딸의 말이 떠올랐다. ‘미래도 생각해야지.’ 그래, 나도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꼭 전자책 한 권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딸의 고민은 단순히 저녁밥값이 아깝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 아마 자신이 하는 공부가 잘될지 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확신이 없으면 사소한 일에도 고민이 생긴다. 하기 싫은 마음은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간다. 그럴 때는 다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마 딸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랜만에 받은 딸의 전화가 반가웠다. 그녀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해결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 나이에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 생각했다. 그런 고민을 많이 해야 나라는 사람을 알아간다. 그건 나도, 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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