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말하는 아침

판단 대신 솔직힘을 배우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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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말하는 아침〉 — 판단 대신 솔직함을 배우다


놀랐다. 출근길에 강아지 세 마리가 갑자기 내 앞에 뛰어나와 짖었다.

강아지는 크지 않은 푸들이었다. 이 골목을 다닐 때 자주 마주치던 녀석들이다. 두 마리는 회색 털, 한 마리는 흰 털이었다. 나는 그들의 주인도 알고 있다.

늘 이 골목으로 걸어서 사무실로 간다. 가끔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강아지를 풀어놓고 놀거나,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지나가곤 했다.

그 집은 일반 다가구 주택이다. 집 앞에는 잡동사니가 가득 진열되어 있다. ‘테리어 집수리’라는 간판이 비뚤게 걸려 있는데, 진열된 물건을 보면 고물상에 더 가깝다. 주전자, 밥솥, 선반, 옷가지들이 집 앞을 넘어 마당 안쪽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빼곡하다.

아저씨는 키가 170cm쯤 되어 보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걸 보니 60대쯤으로 보인다. 아주머니는 통통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덩치로는 아저씨가 더 세 보이지만, 인상으로는 아주머니가 모든 일에 우위에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든 이유는 예전에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욕을 하며 아저씨를 쫓아가더니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아저씨는 덩치가 크고 키도 크지만 아무 말 없이 맞고 있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그 아저씨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침 7시쯤, 사무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그 집에서 강아지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나와 나를 향해 짖었다.

“엄마야!” 소리가 나올 뻔했다. 몸이 움츠러들고 발걸음이 멈췄다.

그때 아저씨가 집에서 나오며 미소를 지었다.

“푸들은 안 물어요. 발길질 한 번 하면 도망가요.”

그런가 생각했다. 다시 생각했다. 그래도 놀란 것은 놀란 것이다.

“저 놀랐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로 걸어갔다.

이 일로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나는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예전 같았으면 ‘오늘 재수 없는 날이야’, ‘저 사람은 왜 아침부터 개 목줄도 안 하고 풀어놔?’라며 불평하고 남의 행동을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는 감정을 솔직히 말했다.

나쁜 감정을 억누르면 화만 쌓인다. 내가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내 감정을 드러내고, 동시에 상대에게 내 마음을 알리는 일임을 깨달았다. 감정을 말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둘째, 나는 그동안 아저씨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쫓아가며 욕을 하고, 아저씨가 맞는 모습을 보며 ‘공처가로 사는 불쌍한 사람’이라 여겼다. 그날 이후 아저씨의 얼굴을 내 마음대로 그려 왔다.

하지만 오늘 아침, 미소를 짓는 아저씨의 얼굴은 그저 평범했다. 성격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 아줌마에게 맞을 일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모른다. 단지 내가 본 한 장면으로 그들의 인생을 재단했을 뿐이다.

집 앞의 어수선한 물건들, 길가에서 밥을 먹는 모습, 세 마리의 강아지까지. 그들의 모든 모습이 내 눈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 같으면 저렇게는 안 살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판단했다.

하지만 남의 삶에 내 기준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들 안에도 나름의 행복과 만족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생각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을 얼마나 잘 돌보고 있는가이다. 나의 감정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그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저씨의 표정은 밝았다. 아줌마에게 맞고 살아도, 그 삶을 사랑하기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아저씨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건 싸구려 동정이었다.

‘나는 내 삶을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큰 질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작은 질문을 던져 본다.

오늘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며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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