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한 끼의 힘

퇴직을 생각하며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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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한 끼의 힘 / 퇴직을 생각하며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켰다. 뉴스를 보니 LG유플러스에서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했다. 조건은 4~5억. 순간 ‘이 정도면 퇴직할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엔 집에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무엇으로 먹을지 고민했다. 하기도 귀찮고, 나가서 사 먹기도 귀찮았다. 나가서 먹자니 입맛에 안 맞을까, 가격이 비쌀까, 균형 잡힌 식사가 아닐까 걱정부터 앞섰다.

평일에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4,000원짜리 백반이지만 맛이 좋고, 영양사가 짜 놓은 반찬과 국이 늘 균형 잡혀 있다. 아침은 삶은 계란 하나로 때우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고, 저녁은 냉장고를 뒤져 대충 해결한다. 샐러드로 때우기도 하고, 라면이나 국수로 해결할 때도 있다. 국이 없으면 구운 김과 밥만 먹을 때도 있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면 점심도 대충 먹고 살 것 같다고. 직장은 단순히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곳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난 고등학교는 밥 잘 나오는 곳으로 갈 거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웃으며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이해된다. 한 끼의 식사가 하루를 결정하는 힘이 된다는 걸. 이 점심마저 무너지면 내 건강을 지켜낼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 식당에 내려가면 식판 위에 그날 마련된 반찬을 정갈하게 담는다. 늦게 가면 반찬이 떨어질 때도 있고 밥이 떨어져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예전엔 불평했지만 이제는 묵묵히 기다린다. 그리고 주어진 점심 한 끼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맛이 있으면 식당 주방에서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도 느껴진다. 언젠가는 이 음식을 만든 주방장이 누구일까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맛있었어요'라고 한마디라도 하고 가야 다음에도 맛있는 반찬에 시원한 국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맛이 별로면 내일 메뉴를 보며 '내일은 괜찮을꺼야'라고 생각한다.

퇴직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 후 익숙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새롭게 짜일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하루 세 끼를 재단하지 못한 채 퇴직을 맞는다면, 그 후의 삶은 생각보다 버겁다. 밥 한 끼 사소하다. 하지만 사소한 것을 챙기지 못하면 인생이 무너질 수 있다.

오늘도 회사 식당의 밥 한 끼를 소중히 먹는다.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작은 루틴이자, 삶을 이어 주는 힘이라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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