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줄의 호의

댓가 없는 친철

by 청아이
제목을 입력해주세요. (52).png

호의란 아무런 이유 없이 내민 손이다.

어젯밤, 퇴근 후 잠시 켠 유튜브에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얼굴이 보였다. ‘인생 질문’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스크린 속 그의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젊은 시절, 김장하 선생님이 준 장학금으로 공부해 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그 호의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평생 노력했습니다.”

문 재판관은 그 후 40년 동안 그때 받은 마음을 품고 살았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요즘 세상은 자꾸 거래를 하려 합니다. 주는 게 있으면 반드시 받으려 하지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쌓이면 세상은 차가워집니다.

남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말이 내 안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받았던 한 번의 호의가 떠올랐다.

몇 해 전 가족들과 평창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딸이 “등 축제 하는 곳이 있다”며 찾아보자고 했다. 초행이라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차를 몰았다. 길이 점점 좁아졌다. 가로등은 뜨문뜨문,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차는 어느새 포장도로를 벗어나 낯선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차가 진흙에 빠져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뒤로 후진하려고 엑셀을 밟았으나 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후방을 살폈다. 그때 낯선 남자가 다가와 앞 창문을 두드렸다.

“괜찮으세요? 뒤로 살짝 돌려 보세요, 제가 밀어 드릴게요.”

그 사람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차를 뺄 수 있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텐데, 그는 발자국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 위에서 끝까지 우리를 도왔다.

그날의 고마움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문형배 재판관의 말처럼, 좋은 세상은 남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때, 그 손길이 또 다른 사람의 온기가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를 마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호의를 베풀었을까?’ 딱히 떠오르는 일은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 한켠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진다면, 그것 또한 작은 호의일 것이다. 오늘 나는 글 한 줄을 내민다. 그 한 줄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조용히 온기가 되어 돌아오길 바라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의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