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숙제

잘하지 안아도 괜찮아 배우는 마음으로 산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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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숙제 /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배우는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


어제는 퇴근 무렵,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수학 모르는 문제가 있는데, 와서 좀 가르쳐 줄래?”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엔 간절함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네 갈께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엄마 집 문을 열자 거실은 어두웠다. 방 안 불빛이 거실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누군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둘째 삼촌이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창밖 풍경을 보며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엄마는 삼촌에게 “맞아 제가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지”하며 내 칭찬을 한다. 좀 찔렸다. 엄마는 내가 오면 이것저것 부탁도 하고 알려달라고 한다. 난 그것이 귀찮아서 핑계를 대고 오지 않은 적도 많다. 일부러 자주 오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엄마는 침대 위에서 앉아 뱅이책상을 펴 놓고 숙제를 하다가 삼촌의 전화를 받은 듯하다. 통화가 끝나자 “왔냐? 밥은 먹었냐?”며 물었다. 나는 “응, 사무실에서 대충 먹고 왔어”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수학 프린트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무한소수, 유한소수'라는 글자와 숫자를 여러번 지웠다 쓴 연필자국이 보였다. 엄마는 프린트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숙제인데, 도통 모르겠어.” 엄마는 프린트 맨 앞쪽의 나눗셈 문제 두 개를 가리켰다. “이건 유한소수, 이건 무한소수야. 맞게 쓴거냐?” 나는 문제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건 정답이야.” 엄마는 그 한마디에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가 참 오래 남는다. 배운 걸 기억해내고, 스스로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엄마의 얼굴. 아마 그 순간의 엄마는 누구보다 ‘학생’ 같았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문제는 어려워졌다. 지수의 계산, 무리수의 구분, 소수의 반복 주기. 나도 가물가물했다. “이건 모르겠네.” 내가 솔직히 말하자, “너도 잊었냐?” “그럼요, 엄마 이거 쉬운거 아니야 엄마가 대단한거야.” 엄마는 허허 웃었다.

엄마는 “틀린 거 지우고 다시 써줘. 다 틀리면 선생님에게 미안해서 그래”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예전 같으면 “엄마 숙제는 엄마가 해야지. 실력대로 평가 받아야지.”라며 가르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엄마의 얼굴에 담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모르더라도,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엄마에게 숙제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배움을 향한 예의였다.

나는 네이버 검색도 하고 엄마가 작성한 노트를 보면서 답을 적었다. 적어 놓은 답이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나가 적은 글씨만 보고도 "너가 와서 숙제 다 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뿌듯해 했다.


엄마는 진형중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초·중·고 과정을 함께 배우는 평생학교다. 엄마는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선생님이 설명하실 땐 아는 것 같다가도, 집에 오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 라며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짝궁 이야기도 했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공부를 잘한단다. “계속 물어봤더니 처음엔 좀 귀찮아했어. 그래도 내가 하도 물으니까, 이제는 먼저 가르쳐줘.” 며칠 전 수학시험을 볼 때, 그 짝궁이 엄마 시험지를 살짝 가져가 몇 문제 써줬다고 했다. “그 덕분에 몇 점은 건졌지 뭐.” 라고 엄마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엄마의 반에는 마흔 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중엔 70대도 있고, 60대도 있다고 한다. 각자의 사연과 이유로 다시 학교를 찾은 사람들이다. 이유와 목적은 다 다르다고 했다. 엄마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노인정만 가는 것보다 다른 곳을 가고 싶어서 우연히 간 곳에서 입학등록을 했다. 특히 엄마의 구미를 당긴건 ‘무료’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늘 “나는 그냥 가는 게 좋아. 아침에 눈을 뜨면 가야 할 때가 있는게 좋아.” 엄마의 목소리에는 묘한 설렘이 묻어 있었다.

성적은 좋지 않다고 했다. 한문 시간에는 따라가기 힘들고, 영어는 읽을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꾸준히 노트를 펴고, 받아 적고, 틀린 글자를 고쳐 썼다. 제출해야할 프린트 한쪽에는 ‘모르는게 많아 죄송합니다.’라고 썼다고도 했다.

얼마 전엔 정보 시간에 자판 연습을 배웠다고 했다. 연습할 자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한쪽 구석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놓았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켜드리니, 엄마는 한 글자씩 눌러보며 말했다. “이게 너무 재밌다. 손가락이 내 말대로 움직여.” 느리고 서툴렀지만, 그 모습은 놀라울 만큼 진지했다. 배움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에게 배움이란 무엇일까. 성적도, 속도도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스스로 안다. “내가 아무리 해도 젊은 사람들처럼 잘하진 못해. 그래도 그냥 해.” 엄마에게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배우는 동안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의 노트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득하다. 그 흔들린 글자들이 오히려 엄마를 다시 세우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며 나 자신을 떠올린다. 글을 쓸 때마다 “왜 이렇게 안 되지?”라는 생각을 반복한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은 문장에 실망하고, 누군가의 멋진 글을 보며 내 글을 초라하게 느낀다. 하지만 엄마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거야.”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몸으로 보여준다. 틀리더라도, 늦더라도, 오늘도 배워보는 사람.

엄마의 공부를 도와주면서 나는 배움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건 노력보다 마음에 가까웠다. 배움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는 시도다. 엄마는 매일 새로운 단어를 외우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나는 매일 새 문장을 쓰며 마음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밤이 늦어 프린트를 다 채워드리고 나서 집을 나섰다. 골목길 가로등 아래, 엄마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 복습을 하며 노트를 다시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빛을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배움이란, 결국 이렇게 사는 거구나.’

나도 오늘처럼, 잘 되지 않아도 꾸준히 글을 쓴다면 언젠가 나의 문장 속에서도 엄마처럼 빛이 날 것이다. 엄마가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글을 쓰는 이유가 ‘살아 있음이 고마워서’일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학생이고, 나 또한 배우는 중이다. 배움은 나이를 가르지 않는다. 다만 마음이 닫히는 순간 멈출 뿐이다.

오늘도 엄마는 틀린 문제를 지우고 다시 쓴다. 나는 잘 안 되는 문장을 고쳐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우리의 공부는 계속된다. 엄마의 손끝에서, 나의 키보드 위에서, 삶은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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