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처럼 곁에 있어 주는 존재의 힘
“엄마, 내 자리 단상을 기준으로 왼쪽 끝이야. 앞에서 다섯 번째. 퇴소식은 10시부터인데 부모님들은 9시부터 입장 가능해. 9시 30분까지 오면 돼.”
퇴소식 전 주 주말, 아들이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퇴소식 행사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왜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 일찍 갈게.” 나는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소식 날 아침, 마음이 분주했다. 짐은 간단히 챙기려 했지만 이것저것 넣다 보니 가방이 무거워졌다. 시어머니와 두 분의 시누이, 성원이(큰시누이의 아들), 남편, 그리고 나는 전날 빌린 렌터카를 타고 화천 체육관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입구에서 나눠준 안내장에는 훈련병들의 자리 배치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아들이 말했던 대로, 단상을 기준으로 왼쪽 끝 다섯 번째 줄. 이름을 찾자 마음이 놓였다.
이미 앞자리는 가득 차 있었다. 나는 2층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고모들과 어머니는 조금 더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리고, 단상에는 군복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제복을 입은 헌병들이 꼿꼿이 서 있었다. 체육관 안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10시, 문이 열리며 훈련병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군가가 울려 퍼지자 체육관이 흔들렸다. 부모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순간, 아들이 보였다. 베레모를 쓴 채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 얼굴은 조금 야위었지만 군복이 그를 더 단단하고 의젓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옷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시상식이 이어지는 동안 단상에 오른 사람들은 상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주먹을 꼭 쥔 아들을 보았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아들의 신발을 보았고,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서 있는 그의 등을 보았다.
이윽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부모님께서 나와 아들에게 태극기와 계급장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어느 쪽으로 내려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앞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렸지만 달리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빨리 내려가서 아들 앞에 서야 하는데….’ 사람들 틈 사이로 아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손에 태극기와 계급장을 들고 있었다. 벌써 주변 부모들은 아들의 어깨에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던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아들에게 갔겠지’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발걸음이 느려질수록 가슴이 조여왔다. 아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를 찾고 있는 듯했다. ‘형진아, 엄마 지금 가고 있어.’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아들이 눈앞에 보였다.
“형진아!”
내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렸다. 그 순간, 아들의 눈가가 붉어졌다. 눈물이 핑 돌더니 이내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전화를 할 때마다 “괜찮아”라며 담담했던 아이다. 그런데 왜 나를 보자마자 울었을까.
그동안 힘들었지만 내게는 내색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와 일병 계급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태극기를, 가슴에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그래, 힘들었구나.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때 뒤에서 시어머니와 고모들이 내려왔다. 큰 시누이가 말했다.
“왜 그렇게 늦게 내려왔어? 형진이가 엄마만 안 보여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내가 안타까워서 다 찍어뒀어.”
그제야 알았다. 아들이 내가 안 보여서 불안했구나. 훈련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게 힘들었던 거구나. 나는 때로 아들의 나이를 이유로 ‘이제는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가면 혼자 살아야 하니까, 상처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아들의 눈물을 보며 알았다. 아무리 단단한 땅도, 단비가 내려야 더 단단해진다는 걸. 엄마의 존재는 그 단비였다. 엄마란, 모든 걸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자식은 안심하고,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갈 힘을 얻는다.
아들에게 엄마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엄마라는 사실이 이토록 큰 위로와 의미가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