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규정 사이에서

사람을믿고 싶은 마음, 행정의 선을 넘나들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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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압류를 했다. 곧 전화가 왔다.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분납을 하고 있는데 왜 압류를 하셨죠?”

이름과 주민번호를 조회해보니, 분납 내역은 없었다.

“여기는 자동차세나 주민세처럼 지방세를 부과하는 구청입니다. 혹시 세무서에 분납하신 건 아닐까요?”

그는 “세무서랑 구청은 다른 곳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종합소득세처럼 국세는 세무서에서 부과합니다. 아마 국세를 분납하고 계신 걸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의 우리은행 계좌를 압류 했다. “그 계좌엔 돈이 없습니다. 다음 주 10일쯤 돈이 들어오면 그때 일부 내겠습니다.” 나는 망설였다. “그렇게 사정 봐주면 납부 안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압류하시면 되지 않나요?”


순간, 예전 일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도 체납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 자동차 압류해제를 해 준 적이 있다. 이전이 급하다는 아주머니 말을 믿고 난 압류해제를 해주었다. 그때도 체납자가 “내일 구철가서 낼께요 납부하지 않으면 부동산 압류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믿었다. 2만 4천원 안 낼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납부하지 않았다. 집에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전화로 서로 감정만 상했다. 나는 체납금 2만 4천 원을 대신 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이번엔 안 된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이번만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2백만원 분납가상계좌를 보내고 말했다. “예금압류 해제 먼저 해 드릴테니 다음주 월요일까지 꼭 납부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담당자에게 해제하라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다.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압류를 하는데, 나는 자꾸 돈도 받지 않고 해제를 하고 있다. 팀장으로서 위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그건 나에게 또 다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급여압류 예고문을 보낸 적이 있다. 50대 자영업자가 전화해 왔다.

“지금 50만 원씩 분납하다가 사정이 어려워 못 내고 있습니다.”

나는 원칙대로 50만 원은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50만 원도 못 내서 이러는데, 그게 됩니까? 나 쓰러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럽니까?”

그의 말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절박함도 느껴졌다. “그럼 지금은 얼마나 가능하신가요?”

“1만 원도 힘듭니다.” 나는 말했다. “그래도 10만 원은 내셔야 해요.”

그는 “알겠습니다. 하루 더 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약속했다.


며칠 뒤, 1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진심을 말했다 .그런 사정 앞에서 나는 너무 냉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체납자들을 조금은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상처로 돌아 왔다. 자동차 압류를 해제해준 아주머니에게도 된통 당했다.


그 후로는 ‘절대 믿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이번에도 나는 또 믿었다. 그 사람이 약속한 날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나는 다시 스스로를 책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쪽에서는 그때 10만 원을 납부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약속 못지키면 안되니까 하루 더 주십시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 같다. 규정대로 일해야 하는 공무원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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