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벗어나야 보이는 또 하나의 길
토요일 아침, 어둑한 새벽빛이 방 창문을 스치고 있었다. 울리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 이불을 갰다. 나는 주말이면 사무실에 나와 글쓰기 줌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다. 주말 일찍 사무실에 가는 일은 나의 생활 루틴이 되었다. 평소 출근할 때는 차를 가져 오지 않는다. 하지만 주말만큼은 차를 가져온다.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세수만 하고 나온 부시시한 얼굴로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까.
지하 2층 주차장 입구로 내려가자 차 바퀴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콘크리트 냄새와 약간 눅눅한 공기가 밀려왔다. 아직 아침 일곱 시도 안 된 시간이라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늘 만만치 않은 곳이다. 구청 주차장은 넓지 않고, 조금만 늦어도 구석진 자리를 찾기 어렵다. 가끔 행사가 있는 날이면 주차 구획선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빈 공간이면 어디든 차를 밀어 넣는다. 나는 습관처럼 벽 쪽 구석으로 차를 붙였다. 거울로 확인하니 공간이 너무 좁아 옆 차와의 간격이 거의 손 한 뼘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오늘은 괜히 여길 왔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차를 댔으니, 이제는 올라가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사무실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헤드폰을 꽂았다. 화면 속 강사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주말의 구청은 평일과 달리 고요했다. 사람들의 발소리도, 복도의 소란함도 없었다.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집중하려 애썼지만, 머릿속 한켠에는 주차장 생각이 남았다. ‘괜히 구석에 댔네. 혹시 이중주차라도 되면 큰일인데.’
강의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노트북을 닫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싸늘한 공기와 함께 엔진 냄새가 났다. 아침의 텅 빈 주차장은 이미 다른 모습이었다.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심지어 통로 한가운데도 이중주차가 되어 있었다. 순간 숨이 막혔다. 내 차 앞을 막고 있는 스타렉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빼지…”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른쪽으로 꺾어 나가야 하는데, 그 방향이 스타렉스 때문에 완전히 막혀 있었다. 차를 뺐다가 들어오는 차를 보고 후진해서 제자리고 들어갔다. 다시 기어를 바꾸고 앞으로 나왔는데 핸들을 돌리니 스타렉스 차량에 닿을 것 같았다. 다시 후진을 했다. 나는 차를 정차하고 밖으로 나왔다. 뒤로도, 옆으로도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내 차와 스타렉스의 거리, 벽과의 간격, 모든 것을 눈으로 재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 데 주차를 하지? 여긴 주차구획도 아닌데.’ 입안에서 불만이 새어나왔다. 속으로 욕이 맴돌았다. 주차장 안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괜히 손끝까지 힘이 들어갔다. 아침에 여유롭게 주차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예전에도 여기에 주차해서 남의 차를 긁어서 돈을 물어준 적이 생각나니 점점 그 차량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회색 차량이 보였다. 차가 내 옆에 멈춰 섰고,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 박팀장이었다. 순간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제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내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왜 그쪽으로 가요? 왼쪽으로 나가면 되잖아요.”
“거긴 들어오는 길이잖아요.”
“제가 뒤로 뺄게요. 왼쪽으로 나가요.”
순간 멍해졌다. ‘왼쪽으로 나가라고?’ 그건 들어오는 방향인데. 하지만 그의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박팀장이 차를 천천히 후진했다. 나는 그를 따라 조심스레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고, 차체를 움직였다. 차가 서서히 빠져나왔다. 박팀장은 들어오는 차를 막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차를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박팀장이 나의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백미러 속에서 그의 차의 깜박등이 깜박이는 걸 보고 내 말이 전해졌다고 여겼다.
밖으로 나오며 다시 바닥을 보았다. ‘진입’과 ‘출구’를 알리는 화살표 표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규칙을 지켜려 애썼다. 늘 ‘나가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질서이고 안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규칙을 잠시 어겼기에, 오히려 길이 열렸다.
생각해 보니 인생도 그렇다. 정해진 길, 익숙한 방향만 따라가면 마음은 편하지만, 때로는 그 길이 막혀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불안하고 답답하다. 누구 탓을 하며 서성이다 보면, 정작 다른 길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 예상치 못한 도움은 그 순간 길을 바꿔준다. 오늘의 박팀장처럼 말이다.
나는 주차장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는 ‘규정대로’만 움직여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규칙은 안전망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끔은 그 안에서 벗어나야 길이 열린다. 그때 필요한 건 조금의 용기와, 누군가의 손 내밈이다.
우리의 삶도 좁은 주차장 같다. 나가는 차, 들어오는 차, 서툰 운전, 막힌 통로가 얽혀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빠져나오는 길이 있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나 대신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물러서야 한다.
오늘의 경험은 내게 말했다. 세상은 혼자만의 판단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막힌 길 앞에서 답답해할 때, 내 곁엔 언제나 나를 돕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 물러서고, 길을 내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아마 ‘함께 산다’는 말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