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는 먹고, 아들은 못 먹는

by 이성애

캐나다에서 돌아온 딸, 그리고 익숙한 맛

음식에는 마음이 담긴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건강을 챙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리움을 전하는 마음까지. 그래서 어떤 음식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마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여름, 딸이 캐나다에서 돌아오면서 그 마음이 담긴 한 그릇의 추어탕이 우리 식탁 위에 올랐다.


딸은 친정엄마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 딸에게 자주 끓여주던 음식 중 하나는 엄마의 추어탕이었다. 국물보다는 건더기가 훨씬 많았다. 일반 음식점보다 두 배는 더 들어간 미꾸라지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딸이 이번에 한국에 오면 먹고 싶은 음식으로 추어탕을 꼽았다. 엄마는 손녀가 원하면 본인이 끓이겠다고 했다. 딸은 할머니 힘들다며 밖에서 사 먹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밖에서 파는 건 미꾸라지가 몇 마리나 들어가지 않는다며 미꾸라지 사다가 끓일테니 저녁에 와서 먹으라고 했다.


다시 끓여진 추어탕, 엄마의 손맛

다음 날, 엄마의 전화를 받고 우리 가족은 엄마 집으로 갔다. 문을 열자 압력밥솥에서는 김이 뿜어져 나오고, 큰 곰솥에는 추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예전보다 국물이 넉넉해 보였다. 엄마는 국물과 건더기를 작은 그릇에 덜어 내밀며 맛을 보라고 했다. 후각을 잃은 엄마는 이제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나에게 대신 확인을 부탁했다.

한 숟가락 떠먹어보니 고소하고 비린내도 없었다. 시래기와 고사리도 부드럽게 넘어갔다. “맛있다”고 말하자, 엄마는 추어탕의 달인이라도 된 듯 웃었다. 딸은 어떻게 이렇게 뽀얗게 국물을 냈냐고 감탄했고, 아들은 말없이 국을 두 번이나 떠다 먹었다. 엄마는 딸의 목에 뼈가 걸릴까 봐 이번에는 미꾸라지를 채에 다 걸러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뼈가 하나도 씹히지 않았다.


오빠 생각, 그리고 새언니의 대답

문득 병원에 입원 중인 오빠 생각이 났다. 얼마전 병원에 가서 간농양으로 수술을 받고 식은땀을 흘리며 죽을 먹는 오빠를 봤다. “엄마, 오빠 한 그릇 갖다 줄까?”라고 묻자, 엄마는 “그러고 싶지만 새언니가 조심하자고 할 지도 몰라”라고 했다. “아니, 엄마가 아들 추어탕 한 그릇 못 먹이냐고?” 되물었다.

엄마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새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추어탕 끓였는데, 오빠 한 그릇 갖다 줄까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아니오. 아직은 좀 자극적인 건 조심해야 할 듯해서요. 병원에 있는 동안은 병원식 하고, 퇴원하면 제가 잘 챙길게요.’

정중한 말이었다. 오빠를 위하는 마음도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끓인 그 한 그릇을 아픈 오빠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엄마도 지쳐 있는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추어탕 한 그릇이었지만 누군가의 조율 없이는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낯설고 버거웠다.

엄마는 말없이 수긍했고, 나도 그 말 앞에서 마음을 접었다. 병원에서 회복 중인 오빠에겐 조심스러운 식단 관리가 필요했다는 걸 알기에... 다만, 마음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마음 한켠이 자꾸 쓸쓸했다. 엄마의 정성을 더는 자유롭게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손녀는 먹일 수 있어도 아들은 먹일 수 없는 이 상황이, 자꾸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누구도 틀린 건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엄마의 마음을 지키고 싶었고, 그걸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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