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함께 있어도 온다.

by 청아이

작년 4월, 딸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로 떠났다. 대학교4학년 때 유치원 교사 교생실습을 하고 나서 한국에서는 유아교사로 일할 자신이 없다며 훌쩍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서 집을 구하고 유치원 교사로 자리 잡았다. 이번 여름 다니는 유치원에서 한 달간의 휴가를 받아 한국에 오게 됐다. 딸은 떠나기전 외로움이 많았던 아이였다. 캐나다에서는 조금 나아질까 했지만 그 외로움은 어딜가나 따라오는 것 같았다.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기만 하면 뭐든 다 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통화 뒤로 식탁에 올려진 생선조림과 김치찌개를 보며 "맛있겠다"던 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서로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적어가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의 서촌 한옥 숙소도 예약했다. 엄마와 딸, 나, 아들 이렇게 넷이 조용히 하루 밤을 보내자는 계획이었다.


광장시장에서 육회비빔밥를 먹고 '서촌스테이' 한옥에 가기로 했다.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먹을 작정이었다. 육회 비빔밥은 딸이 캐나다 가지 전 친정엄마가 우리식구에게 사준 음식이다. 딸이 한국 와서 먹고 싶은 목록에 포함되었던 음식이기도 했다.

육회비빔밥과 산낙지 한 접시를 주문했다. 딸은 꿈틀거리는 낙지를 보며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핸드폰을 찾았지만 없었다. 집에 두고 왔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딸은 몇 번이나 중요한 물건을 빠뜨리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핸드폰을 두고 와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나보다.

딸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았듯 싶다. 자신이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하루 정도는 없이 지내보는 건 어때?”라고 툭 내뱉었다.

딸은 시무룩해졌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비빔밥을 그만 먹겠다고 했다. 분위기는 한 순간에 싸해졌다. 엄마는 상황을 풀어보려 아들에게 “네가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도 딸을 보내기는 싫었다. 오늘 주인공은 딸인데 그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도 “형진이, 네가 다녀와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딸은 동생에게 “됐어 가지 마”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우리 셋은 모두 어쩔 줄 몰랐다.

딸이 좋아할거라고 믿었던 계획이 오히려 짐이 된 듯 했다. 정작 딸은 끌려온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변했다. 난 서운하기 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든 딸의 마음을 풀고 싶었다. 청계천을 걷자는 엄마의 말에 그러자고 했다가 딸의 표정에 마음을 바꿨다.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가 더위를 피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딸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하면서 시선을 창문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괜히 한국 온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녀의 알 수 없는 기운에 내가 그를 위로 한다고 하는 말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온 엄마에게도,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미안했다.

숙소는 서촌의 조용한 한옥이었다. 고요한 마당, 댓돌 위의 고무신, 대문 옆 나무 욕조가 있었다. 딸은 둘러보지도 않고 침대를 보더니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식기도 다 있네. 와, 저 담쟁이덩굴 참 예쁘다. 목욕탕도 있어!” 엄마도 나의 말에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엄마에게 목욕을 하자고 했다. 나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풀었다. 엄마는 딸을 욕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딸은 입이 뿌루퉁하게 나와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살에 욕조는 커품이 일었다.

딸은 못 이기는 척 조용히 물에 몸을 담갔다. 엄마와 나는 “좋다~”는 말을 연신 흘려보냈다. 그제야 딸이 천천히 마음을 꺼냈다.

“캐나다에선 뭐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서 외로웠어. 한국에 오면 안 외로울 줄 알았는데, 여기와서도 여전히 외로워. 난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날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물속에서 피어오른 거품만이 잠시 공간을 메웠다. 어떤 말도 함부로 건넬 수가 없었다.

“예원아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곁에 누가 있어도 마음이 안 통하면 외롭워.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도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어. 내 마음은 나만이 가장 잘 알잖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몰라준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 그래도 누군가 널 좋아하고, 널 생각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이 조금은 작아질 거야.” 라며 나는 거품을 딸의 어깨에 올려주었다. 하얗고 가벼운 거품이 무거운 감정 위에 잠시 앉아 있었다.


딸의 외로움은 깊고 오래된 것이었다. 말로 “외롭다”고 할 때마다 나는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했다. 벗어나고 싶어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느낀 외로움은 아마도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건낸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목욕 이후에 난 그녀와 빵도 사고 저녁 음식을 사러 나갔다.

내가 마련한 평화로운 공간도, 함께 있는 가족도 그 외로움을 덜어주지 못했다. 나는 딸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들이 진정 딸의 마음을 위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한 건 아닌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녀에게 핸드폰은 그저 기계가 아니었다. 그 속엔 딸의 삶이였다. 길을 찾고, 검색하고, 친구와 연결되고, 외국에서 하루를 견디는 방법들이 있었다. 그런 필수적인 것을 내가 가볍게 여긴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외로운 건 맞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그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순간은 있다. 그걸 찾아가는 것이 삶이다.

외로움을 인정한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누구나 외롭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단단해진다. 나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해본다. “내 마음은 나만이 안다. 나는 지금 외롭구나.” 그 한마디가 내 삶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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