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존재의 고통을 보며

선함과 잔인함 사이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하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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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넷플릭스에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숙직을 하고 집에 오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눕자니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건 영화 보는 일이다.

뭘 볼까 작품을 찾다가 며칠전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고흐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느지 찾아 보았다. 검색해 봤지만 넷플릭스에는 없었다. 계속 리모콘의 버튼을 누리다가 “프랭켄슈타인”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책으로 보다가 잔인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덮었던 이야기였다. 지금의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2시간 30분으로, 파트 1은 빅터 이야기, 파트 2는 프랭켄슈타인 시점으로 구성돼 있었다.

빅터는 유럽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야망이 컸고, 부유한 집안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엄격한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자상했다. 빅터는 아버지 보다는 엄마와의 관계가 더 좋았다. 아버지는 빅터가 훌륭한 의사가 되길 원하며 혹독하게 교육했다. 그러다 엄마가 둘째를 낳다 죽는다. 빅터는 엄마를 죽게 만든 건 아버지라고 믿었다. 그의 반항심은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의사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게 되었다.

이후 아버지마저 죽고 형제는 떨어져 살게 된다. 빅터는 죽은 장기에 전기 자극을 주면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교수들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비난했지만, 동생의 약혼녀 엘리자베스의 삼촌만은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실패 끝에 결국 빅터는 프랭켄슈타인을 만든다.

프랭켄슈타인이 아는 단어는 “빅터”뿐이었다. 그는 재생력이 뛰어났고 힘이 셌지만, 빅터는 그를 멍청이 괴물로만 여겼다. 자신의 연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빅터는 모든 흔적을 없애려 했다. 연구실을 불태웠지만 프랭켄슈타인은 도망친다. 파트 1은 여기까지다.

파트 2는 프랭켄슈타인의 이야기다. 그는 도망치다 한 집에 숨어 산다. 너저분한 망토를 두르고 말도 못하는 그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플랭캔슈타인은 그들과 살고 싶었다. 그들을 위해 겨울 땔감도 날라주고 울타리도 고쳐주었다. 그 집에는 장님인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프랭켄슈타인을 ‘자연의 정령’이라 부르며 그의 선함을 고마워했다. 어느 날 늑대가 가축을 물어 죽이자 가족들은 이 집을 떠나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남겠다고 했다.

가족이 떠난 뒤 프랭켄슈타인은 할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와인을 건네다 깨뜨리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그를 안아주었다. 프랭켄슈타인은 자신의 탄생을 알고 싶어졌고,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시체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빅터를 찾아가 자신 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죽지 않고 살아가야한다면 함께 살 수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빅터는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의 고통스러운 싸움이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서로를 이해하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이 깊게 남았다.

첫째, 죽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빅터의 동생의 약혼녀인 엘리자베스는 프랭켄슈타인을 구하려다 죽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며 살아야하는 플랭캔슈타인을 생각하니 죽지 않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함께 왔다.

둘째, 장님 할아버지는 프랭켄슈타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마음’을 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괴물로 보았다. 빅터는 그를 멍청하다며 무시했고,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버리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을 판단하고 제거하려 하는지 떠올랐다. 힘이 세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보기 싫은 것은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는 존재, 바로 인간이었다.

영화와 책은 인간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안에 있는 욕망, 두려움, 잔인함, 그리고 작은 선함까지. 프랭켄슈타인을 다시 보며 이런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결국 인간이 깆추어야 할 인간다움이란 남을 돕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아닐까. 장님 할아버지와 엘리자베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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