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지 않고 오래 지킬때 비로소 내것이 된다.
밖에서 달칵거리는 그릇 소리가 들렸다. 자명종이 울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밖이 어수선한 걸까. 남편이 오늘은 나보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었나. 눈을 얇게 뜨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7시 7분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불을 개고 있는데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핸드폰 알람이 안 울렸네 안 울렸어.”라고 하며 허둥댔다.
남편은 태연하게 “이렇게 된 거, 푹 자면 좋지 뭐”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말과 달리 나는 마음이 바빴다. 7시 45분 전화 중국어 수업을 생각하면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잘못하면 길거리에서 전화를 받을 수도 있다. 다행히 어제 머리를 감아둔 덕분에 오늘은 세수만 하면 됐다. 스킨, 로션, 선크림을 순서대로 바르고 쿠션으로 얼굴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나에게 화장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 눈썹 그리기가 남았다.
나는 눈썹이 유난히 빈약하다. 머리카락은 멀쩡한데 눈썹만 듬성듬성하다. 그래서 눈썹을 그리지 않으면 얼굴이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 브라운, 회색, 진갈색.색이 다른 펜슬이 세 개나 있다. 립스틱은 없어도 눈썹 펜슬은 꼭 챙겨둔다. 다이소에서 천 원 주고 산 제품인데도 품질은 꽤 괜찮다. 매일 쓰는 물건은 가격보다 손에 익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이 펜슬이 늘 마음에 든다.
눈썹 문신을 했던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 다 지워졌지만 다시 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아침 시간은 분명 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문신을 하고 싶지 않다. 문신은 편하지만 늘 같은 얼굴을 만든다. 나는 매일 그리는 그 번거로움 속에서 오히려 작은 변화와 재밌음을 느낀다. 어떤 날은 브라운을 먼저 그린 뒤 회색을 얹어 자연스러운 음영을 만들고, 어떤 날은 진갈색으로 단번에 그리며 시간을 줄인다. 색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이제는 내 아침의 리듬이 됐다.
결국 나의 화장에 화룡점정을 찍는 건 언제나 눈썹이다.
서둘러 눈썹을 그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구의회 세출 예산 심의가 있어 과장님 뒤에 앉아 의원들에게 인사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하게 입고 싶었다. 나는 딸이 입다가 내게 준 베이지색 가디건을 꺼냈다. 특별한 브랜드도 아니지만 두께와 길이, 색감이 이상하게 나와 잘 맞는다. 비슷한 옷을 사려고 여러 번 찾아봤지만 꼭 이만큼 편한 옷은 없었다. 그래서 더 아끼게 된다. 외투 안에 받쳐 입어도 좋고, 셔츠 위에 가볍게 걸쳐도 좋다. 오늘 같은 쌀쌀한 날씨에는 특히 더 손이 간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차갑게 불어 귀가 얼얼했다. 목도리는 둘렀지만 귀가 문제였다. 정류장에서 귀를 비비며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아무래도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가 올 것 같았다. 그래도 버스 안만 아니면 된다 싶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수업은 예상대로 늦잠 이야기로 시작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 허둥지둥 나온 이야기, 남편이 깨우지 않았던 이야기, 머리 안 감은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까지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말했다.
“전화 수업은 꼭 사무실에서 받아야 그날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디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버스 정류장에서도. 하지만 나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전화기를 귀에 대는 그 순간에 마음이 정돈된다.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하루의 첫 문이 차분하게 열린다.
생각해보면 삶이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는 늘 비슷한 조건이 있었다. 자리를 지키는 물건들, 손에 익은 일상들, 반복해서 쌓이는 작은 습관들. 비싼 것도 아니고 화려한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하루를 단단하게 받쳐준다.
눈썹 펜슬도 그렇다. 문신처럼 편리하지 않아도, 매일 그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오래 입은 가디건도 그렇다. 새로운 옷보다 몸에 익은 느낌이 더 큰 위안이 된다. 전화 중국어 수업도 마찬가지다. 바쁜 출근길의 한가운데에서 사무실이라는 고정된 자리를 통해 마음을 붙들어 준다.
편리함이 삶을 다 편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오래 써서 손때 묻은 물건들은 그 자체로 나의 역사가 되고, 나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 된다.
내 삶의 균형은 결국 그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아끼고, 돌보고, 때로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지켜온 것들. 오늘의 작은 소동 속에서도 나는 다시 느꼈다. 내 것을 만들고 싶다면 그만큼 애정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 애정이 쌓여 비로소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