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란

평소의 일상 속에서 틈을 내어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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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고를 마치고 나니 새벽 3시였다.

지난주 목요일, 출판사 편집장에게서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최종 점검이니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라는 문장과 함께 점검 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출력을 해서 볼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3차 피드백을 받은 뒤에도 퇴근 시간 이후 사무실에 남아 글을 읽고 고쳤다. 원고를 보낼 때마다 더 이상 손볼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메일에는 여전히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탈고 안내를 받은 뒤부터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지 먼저 떠올렸다. 판단을 덜어내려 했다. 그런데도 AI에 글을 넣어 물어보면 내 감정과 판단, 편견이 여전히 드러난다고 했다.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다음 문장을 고치지 못했다.

금요일에는 인사 발령이 있었다. 승진한 직원들이 맥주 한잔하러 가자고 했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모든 직원이 나간 사무실은 조용했다. 내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내 귀에 들렸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일찍 나왔다. 일요일 아침 7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웃옷을 벗고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았다. 오늘 저녁에 시아버지 제사가 있다. 오후에는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해야 한다. 그 시간 전까지 나는 탈고를 마쳐야 한다. 문장을 읽고 고쳤다. 수정한 문장을 원고에 옮겼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확인했다.

11시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카카오톡 알림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계속 징징거렸다. 고개를 돌려 전화기 화면을 살폈다. ‘시어머니’라는 이름이 보였다. 순간 움찔했다. 웬만해선 시어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전화기에 ‘시어머니’라는 글자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알려주는 듯 했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오늘 시아버지 제사인데 잊은 거 아니지? 언제 올 거냐?”라고 말했다. 나는 다소곳이 알고 있다고 말하고 12시쯤 가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에는 화면의 글이 읽히지 않았다. 쓰던 원고를 저장한 후 네이버 메일로 보냈다. 가방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12시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일어나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시댁에 도착하니 거실에 전기 프라이팬이 놓여 있었고, 부칠 전 재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없었다. 예전에는 내가 도착하면 그제야 장을 보러 나가곤 했다.

연근 튀김부터 고구마 전, 동태전, 배추전, 새우튀김을 차례로 부쳤다. 다부치고 나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팠다.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힘들어서 그런지 전의 모양도 고르지 않았다. 생선을 프라이팬에 올리고 나서야 잠시 쉴 수 있었다. 전기장판에 등을 대고 누웠다. 머릿속에는 아직 손대지 못한 원고들이 떠올랐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목차 중 세장까지만 탈고를 마친 상태였다. 남은 두 장이 마음에 걸렸다. 누워 있어도 나머지는 언제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저녁을 먹고 나물을 무치고 탕국을 끓이고 나서야 제사 음식이 모두 준비됐다. 제사를 조금이라도 일찍 지내길 바랐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밤 10시는 넘길 것 같았다. 앉아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는 방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라고 했다. 나는 피곤 한 척하며 방에 가서 누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렸을까. 밖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뒤 어머니가 깨웠다. 거실로 나오니 제사상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시계는 10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절을 하고, 챙겨준 전과 과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바로 잠들 수는 없었다. 아직 두 장의 탈고가 남아 있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한 편씩 천천히 읽으며 고쳤다. 두 장에 실린 16편의 탈고를 마쳤다. 새벽 3시, 다시 회사 메일로 보내고 나서야 의자에서 몸을 뗐다. 그 시간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토요일에는 잠실 교보문고 사인회에 다녀왔고, 일요일에는 제사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친 뒤 그냥 잠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서 탈고를 이어갔다.

어디까지가 최선일까 생각했다. 내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오직 글만 붙드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일상 속에서 틈을 내어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 그 정도가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최선이었다.

책이 출간되면 마음에 꼭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말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새벽 3시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퇴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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