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자가 된 엄마에게 읽어주기
일요일에 엄마 집에 내가 출간한 책 열 권을 두고 왔다. 엄마가 책이 나오면 집에도 갖다 놓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엄마 집에 들렀다. 집 거실 바닥에는 엄마의 책가방이 지퍼가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엄마는 신설동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돌 소파에 작은 책상을 올려두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영어 공책이었다. 연필로 쓴 글씨가 가지런했다. 책상에는 까만 지우개 가루가 보였다. 나를 보더니 춥지 않냐고 물었다. 돌 소파가 따뜻하다며 와서 앉아 보라고 손짓했다.
그 돌 소파는 새 아파트로 이사할 때 엄마가 꼭 사고 싶어 하던 것이다. 나는 반대했다. 소파는 푹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도 부담스러웠고 사두고 쓰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엄마는 돌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돌 소파에서 잔다. 그곳에서 하루가 지나간다. 전원을 켜면 바닥이 따뜻해진다. 이불 속으로 다리를 밀어 넣고 앉으면 아궁이 있는 방의 아랫목 느낌이 난다. 일어나기 쉽지 않다.
나는 웃옷을 벗고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학교에 내 책 세 권을 가져갔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께 한 권을 드리고, 국어 선생님께도 한 권을 드렸다고 했다. 짝꿍에게도 한 권을 주었다고 했다. 딸이 책을 냈다고 하니 다들 신기해했다고 했단다. 친구들이 자기들도 보고 싶다고 했단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딸의 책을 집에 쌓아두는 게 맞는지 팔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얼마 전 나도 엄마와 같은 마음이 들었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보리 언니가 책을 더 사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한 권을 선물한 상태였다. 누군가 내 책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마음은 고마웠다. 그런데 돈을 받으려니 내가 장사꾼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주기에는 또 마음이 걸렸다.
식탁 위에 내 책이 놓여 있었다. 엄마에게 읽어 봤냐고 물었다. 숙제가 많아 아직 못 읽었다고 했다. 책을 가져다 놓을 때 내가 엄마에게 두 꼭지를 읽어주었다. 엄만 그 후에는 읽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읽어주겠다고 말했다. 책을 들고 엄마 옆에 앉았다.
오늘 점심때 팀 직원이 읽다가 마음이 울컥했다는 부분이다. 4장 8꼭지를 펼쳤다. 내 책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유일한 꼭지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문장을 하나 넘길 때마다 엄마의 고개가 조금씩 내려갔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계 초침 소리만 거실에 남아 있었다. 내가 다음 문장을 읽기 전 잠깐 멈추었다. 엄마는 두 손을 엉덩이 밑에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다 읽고 나자, 엄마는 “네가 쓴 것 같지 않구나.”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남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힌다고 했다. 굴다리 아래 앉아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글로 옮겨 두니 더 또렷해졌다고 했다.
나는 서너 꼭지를 더 읽었다. 엄마는 “책은 이렇게 쓰는 것이 맞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책을 낸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도서관에 기증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열 권을 더 가져다 두겠다고 했다.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 나는 천 가방에 책 열 권을 넣어 들고 출근했다. 단톡방에 책을 선물하겠다고 올렸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건네기로 했다. 줄 사람의 이름을 책 속에 적었다. 처음부터 책을 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냥 떠나보내는 데 망설였다. 첫 장이 구겨질까, 봐 손으로 한 번 더 눌러 펴고 표지를 다시 쓰다듬었다. 나는 책을 걱정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아직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자식은 언젠가 품에서 내보내야 한다. 책도 그렇다. 누군가의 손에서는 뒹굴 수도 있다. 누군가의 손에서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나의 책은 따뜻한 돌 소파에 앉아있는 두 모녀에게 머물러 주었다.
전원을 켜면 바닥이 데워진다. 전원을 끄면 다시 차가워진다. 내가 쓴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온기를 켜는 스위치가 되어 그들 곁에 머물러 주길 바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책은 읽으려고 쓰는 게 아니라 건네지기 위해 쓰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