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내 삶을 놓치고 있었다.
아침 신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가 된 북한군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파병되었고 포로가 되었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국가는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에 나가서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논리다. 국가와 사상, 제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늘했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가 어느 순간부터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목숨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사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떤 기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을 뒤로 미뤄두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에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았다. 출연자들은 모두 떨린다고 말하지만 노래를 시작하면 자신의 무대에 몰입했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의 능력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는 왜 늘 노래를 듣는 사람일까.
일요일 오후에는 전국노래자랑을 즐겨 본다.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자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이 점점 재미없어졌다.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만 멈춰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하지 않고 남이 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무대에 서고 누군가는 그 무대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뉜 삶을 떠올리다 보니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텔레비전에는 달인도 나온다. 몇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음식의 달인이 된다. 그들은 한 가지 일을 오래 붙잡고 살아왔다. 나는 아이를 26년 키웠고 공무원으로 30년을 살았다. 그런데 나는 왜 달인이 되지 못했을까.
그동안 조금씩 해온 일들이 분명 많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일을 부러워하며 바라보다가 이제는 그 모습조차 견디기 어려워졌다.
비단 나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같이 시험을 보고 같이 공무원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 언니들이 있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뿐이다. 향미 언니는 7년간의 평주사로 근무하다 이번에 팀장 보직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가족 문제, 건강 문제로 걱정이 늘어났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걱정과 불안과 한숨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감정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쓴다. 아침에 영어 공부해 보고 퇴근 후 운동도 해본다. 삶을 바꿔보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조금 나아지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이걸 왜 하고 있지 라고 질문이 다시 올라온다. 남들은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일은 정답이 아닌 것 같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내가 저자 특강을 했다. 3일 후 어제는 황지영 작가의 저자 특강을 들었다. 그는 이야기를 잘했고 강의 흐름도 단정했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 나는 내 특강이 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후기들을 읽으며 기뻐했다. 그런데 황지영 작가 강의를 보고 나니 내 부족한 점이 또렷하게 보였다. 며칠 만에 마음이 이렇게 바뀌었다. 이상할 정도로 쉽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사람 마음이었다. 내가 못 해서가 아니라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 강의에서 내 책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그 과정과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지영 작가 강의를 듣는 순간에는 감정에 휩쓸렸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그 감정이 조금 떨어져 나온다. 글쓰기는 뒤엉킨 감정과 생각을 갈라놓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다음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남의 삶을 본다. 부러워하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다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그 마음을 밀어냈다면 지금은 잠시 들여다본다.
이렇게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남의 삶을 보느라 정작 내 삶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도 다시 쓴다. 잘하지 못해도 아직 찾는 중이어도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도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