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숨겨진 생활
독일의 삼림 관리원인 피터 볼레벤이 쓴 <나무들의 숨겨진 생활The Hidden Life of Trees>이라는 책은 2016년에 영문판으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나무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사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나무도 두뇌가 있고 함께 대화도 한다니!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그때까지의 나의 인식이나 관심은 자연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읽은 <회색 늑대 이야기>나 <파브르 곤충 이야기> 외에는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정도가 동식물의 생태에 대해 읽은 거의 유일한 책이었다. 최 교수의 책은 물론 재미있고 여러 신기한 동물의 세계를 엿볼 수 있지만, 스스로 말한 것처럼 동물의 행동을 빌어 우리 사회를 반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동식물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서적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자연에 관심이 많은 동생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전 처음 알게 된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삶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숲을 찾을 계절에 나무수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는 글을 쓰려고 준비하다가 피터 볼레벤이 그 이후 동물에 대한 책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The Inner Life of Animals>, 나무와 벌레와 곤충과 동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대한 책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The Secret Wisdom of Nature>,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책 <인간과 자연의 비밀연대The Heartbeat of Trees>도 연달아 내놓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의 성공에 힘입어 다음 책들도 씌어진 것 같은데 이 책 모두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어 약간은 놀랍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피터 볼레벤의 네 권의 책을 차례로 소개하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서로 겹치는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각 책마다 다루는 주요한 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들도 많다.
독자들은 자신이 보다 관심이 많은 분야의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동. 식물의 생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네 권 모두 읽어 보길 권한다.)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한 책들이지만 피터 볼레벤의 일관된 주장은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이며 그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생명체 하나하나 또한 전체를 위해 중요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존재하고 그 속에 인간이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의 생태계는 수십만 종의 생명체가 상호의존하고 연결되어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총체적이고 충만한 생명체이다.
<나무수업>은 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이 그럴 만큼 놀라운 사실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피터에 의하면 나무도 생각을 하고, 위험을 감지하면 방어를 위한 시스템을 발동하고, 심장과 같은 박동을 갖고 있다.(나무의 심장에 대한 얘기는 <인간과 자연의 비밀연대>라는 책에 나온다.) 무엇보다도 나무들은 서로 대화하고 어려움에 처한 동무들을 도와주며 영양분을 골고루 나눠주는 사회안전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여러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들을 인용하고 본인이 삼림 관리원으로 생활하면서 얻은 여러 관찰들을 소개한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과학적 실험과 논쟁들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나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나무사랑에 의해 편향된 감상주의나 종교적 영성주의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실'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무들이 땅 아래에서 서로 뿌리로 의사소통도 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 중이던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라는 학자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나무들이 뿌리 끝에 달린 노드(결절)를 통해 화학물질을 내보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이 화학물질을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다른 나무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미줄망처럼 뻗어 나가는 곰팡이 류이다. 이 나무들 사이의 땅 밑 네트워크를 수잔은 '나무들의 광역 웹Wood Wide Web’이라고 불렀다.
그의 연구는 2021년 <어머니 나무의 발견Finding the Mother Tree>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어머니 나무’라는 개념은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위성 나비족의 신성한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에 그 연구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다른 학자들도 있는데 수잔 팀이 주장하는 나무들 사이의 네트워크의 방향성이 편향된 관점으로 해석되었다거나 충분한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장되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피터 볼레벤은 수잔 시모드의 연구를 적극 수용하는 입장이다. 어쨌든 나무들이 뿌리에서 내뿜는 화학물질이나 이를 전달하는 균류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 대화가 단지 서로에게 꼭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이견이 있는 것 같다.
나무들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뿐만 아니라 영양분도 서로 나눠준다.
같은 지역의 땅도 물 빠짐이라든가 영양분 상태가 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처음에 각각의 나무의 광합성 능력도 다 다를 거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실험결과는 백 퍼센트 달랐다. 나무 둥지가 굵던 가늘던 그 일대의 같은 종의 나무는 이파리당 설탕 생산량이 같았다. 적어도 같은 종끼리의 나무세계는 평등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부의 재분배는 뿌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식된 나무들, 즉 가로수나 목재용 플란테이션 삼림은 이식 과정에서 뿌리를 다쳐 이런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해 모든 외부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무들은 함께 모여 사는 것이 더 유리하고 나무에게 넓은 공간을 주는 것이 나무를 잘 성장하게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솎아내는 삼림 경영 방식은 경제적으로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한다.
나무들이 공동체적 안전망에 의존해 사는 고도의 사회적 존재라니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나무들의 웰빙은 그들의 공동체에 달려있으며 소위 약한 개체들이 잘려 나가면 공동체 전체가 약해진다고 한다. 그 영향은 단지 나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공간으로 내려 쬐는 햇빛은 땅을 건조하게 하고 땅 위와 아래 사는 생물들을 위협하고 숲의 온도를 높인다.
한 번 약해진 시스템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무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가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는 곰팡이류는 그 대가로 나무들이 생산하는 영양분의 1/3까지를 자신들이 차지한다. 이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줄 뿐만 아니라 나무가 빨아들이는 수분에서 중금속들을 걸러 주는 일도 한다. 체르노빌 사고 이전에 방사능 물질인 세슘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버섯 류였다고 한다. (자연산 버섯을 먹어도 되나 걱정이 좀 되는 대목이다.)
곰팡이 류는 나무에 침입하려는 해로운 박테리아나 다른 파괴적인 곰팡이들을 퇴치해 주기도 한다. 자신이 보호하는 나무가 영양분의 부족으로 위기에 처하면 치명적인 독성물질을 내뿜어 주변의 미생물을 죽여서 그들이 나무에 필요한 질소 공급원이 되도록 하는 곰팡이도 있다.(소나무 단짝 라카리아 비콜라Laccaria bicolor)
나무들은 이 밖에도 후각과 시각, 전기적 신호로도 서로 소통한다고 한다. 소리로도 소통을 하는데 뿌리가 내는 투두둑 소리의 주파수는 220 헤르츠라고 한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의 모니카 가글리아노 박사 팀은 실험실에서 새싹이 소리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뿌리와 관계없이, 다른 곳에서 220 헤르츠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새싹들의 이파리 끝이 그 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는 풀들이 그 주파수를 인식한다(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들은 뿌리가 내는 소리에 따라 그 방향으로 가지 끝을 뻗는다.
피터는 당신이 언젠가 숲 속을 걷다가 투두둑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단지 바람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기울여 보라고 권한다.
나무들이 동체수정 – 같은 나무의 암컷과 수컷이 수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한 전술들도 정말 놀라웠다. 암꽃과 수꽃이 피는 시기를 달리하는 나무도 있고, 버드 체리 같은 나무는 벌이 꽃가루를 묻힐 때 같은 유전자를 가진 꽃가루인지를 미리 테스트해서 다른 유전자를 가진 꽃가루 만이 암술의 수정관에 들어오도록 입구를 열거나 닫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암. 수가 다른 나무인 버드나무는 벌들을 통해 수정을 한다. 수나무는 벌이 자기에게 먼저 와서 꽃가루를 묻힌 뒤 암나무로 가도록 유도하기 위해 밝은 노란색으로 먼저 벌들을 유혹한다. 벌들은 수나무를 먼저 방문한 후에 어두운 녹색을 띤 암나무로 날아간다.
버드나무가 꽃가루를 날릴 때 강변의 어느 버드나무가 수나무이고 어느 나무가 암나무인지 우리도 이제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식물들이 사랑을 나누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고 창조적이며 사려가 깊다.
바람과 벌은 나무들의 유전자 풀이 가능한 한 넓은 지역에서 서로 교환되어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연히 고립된 지역에서 소수의 나무들이 자라는 경우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없다. 결국 이 나무들은 몇 세기가 지나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나무들이 곧은 기둥으로 성장하고 우산처럼 펼쳐지는 머리를 갖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고 있는 지역의 나무들은 뿌리를 내린 땅이 느슨해지면서 나무들이 개별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이른바 ‘술 취한 숲druken forest’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학습schooling을 잘 한 나무들은 더 튼튼하게 성장하기도 한다. 다만 나무들은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몇 년 혹은 십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나무들이 학습을 한다는 사실은 가글리아노 박사의 미모사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신기한 식물들, 그들과 애증관계에 있는 숲 속 생물들, 해와 물과 바람의 역할에 대한 얘기가 펼쳐진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처럼 자연에 대해 얕은 지식 밖에 없었던 사람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산책길에 만나는 수많은 생명들의 삶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재천 교수의 모토처럼 ‘알면 사랑한다’.
사족 하나,
제랄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도 그랬지만 피터 볼레벤의 책에서도 일본의 기초연구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한국이 기초과학 분야가 매우 뒤떨어져 있고 취약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연과학 분야 특히 동. 식물학 분야는 더 심한 것 같다.